[로터리] 위임하되 디테일을 챙겨라

조좌진 롯데카드 대표


기업 경영에는 델리게이션, 즉 권한 위양이라는 것이 있다. 기업 운영 형태상 모든 의사 결정이 최고경영자(CEO) 한 사람에 집중돼서는 적절한 타이밍에 제대로 된 의사 결정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의사 결정의 중요도나 파급력을 감안해 직급 또는 직책에 따라 단계별로 차별화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통상적으로 델리게이션이라 정의 내린다.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면 맞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델리게이션을 ‘아랫사람의 역량과 동기부여(motivation)를 존중하고 그들의 의사 결정을 믿고 책임져 주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통상 델리게이션을 위해서는 일정 금액 이상의 비용 집행이나 투자,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의 대소 등 분명한 의사 결정 위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에서 이야기하는 ‘위임전결규정’이라는 내부 지침을 만든다.


그런데 만약 위임전결규정에 따라 권한 위양을 하고 의사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추후 발생한 문제나 부정적 영향에 대해 CEO나 고위 임원이 의사 결정자를 호되게 나무라고 책임을 묻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도 대부분은 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에 소위 윗분에게 보고하고 묵시적인 승인을 얻은 후 결재 서류에 사인하는 행태를 보이기 쉽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델리게이션이라 하기 힘들다.


무엇이 전략적이고 바른 의사 결정인지를 판단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어떤 의사 결정을 선호하느냐를 고민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조직 구성원들 스스로 필요한 일을 찾아서 추진해 나가는 역동성을 잃어버린다.


진정한 델리게이션은 아랫사람의 역량과 동기부여를 존중하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 그리고 권한 위양된 의사 결정에서 설령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은 의사 결정을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존중하고 믿고 그렇게 하도록 한 CEO의 책임이어야 한다.


하지만 델리게이션을 하더라도 디테일을 챙겨야 한다. 디테일을 챙겨야 하는 기준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업 경영의 ‘첫 단추’와 ‘마지막 단추’이다. 기업의 중추적인 경영 전략 중 가장 우선순위가 있는 과제들이 그 첫 단추이고, 고객과 연결된 매개체가 마지막 단추이다.


중요한 전략 과제는 그만큼 기업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완벽하게 디테일을 챙겨야 한다. 또 기업의 얼굴 역할을 하는 대고객 매개체 또한 보다 섬세하고 디테일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진정한 델리게이션은 조직을 역동적이고 진취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의미 있는 디테일을 챙기면 회사가 바뀌고 문화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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