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업계에 노조 가입 바람이 갈수록 거세다.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급격한 임금인상 속에 노조원과 회사간 갈등이 불거지고 네이버·카카오(035720)를 중심으로 계열사 구조개편 까지 맞물리면서 그동안 ‘노조 무풍지대’로 여겨진 IT업계에도 노조 가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IT기업들의 경우 경영진의 빠른 의사 결정 등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갈수록 비대화되는 노조와의 관계 정립이 향후 성장의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 아래 모인 노조 가입자가 최근 1년 사이 8000여명에서 1만 1000여명으로 약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4개사였던 소속 지회 수도 점증해 현재 11개가 됐다.
IT 업계가 급격히 덩치를 불리면서 복지 및 처우 등 여러 측면에서 갈등이 누적돼왔지만, 최근에 노조가 전면에 나서는 배경에는 굵직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복잡한 계열사 구조가 있다. 계열사 약 2500명의 처우 개선을 위해 지난달 단체 행동에 나선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은 지난 23일 투쟁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 이들은 엔테크서비스, 그린웹서비스 등 5개 계열사에 다른 계열사 수준으로 임금 인상률을 보장하고 개인업무 지원비를 증액하는 등 형평성 있는 처우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목소리가 노조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네이버는 올 상반기 전체 노조원이 처음으로 3000명을 넘어섰으며, 손자 회사 엔테크서비스는 최근 계열사 중 두 번째로 과반 노조를 달성했다. 이들 계열사들이 네이버가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의 유지 보수 등 중요 업무를 담당하는 만큼 이를 내세워 사측을 압박할 수 있다.
카카오 역시 올해에만 여러 차례 노조에 의해 굵직한 결정이 뒤집혔다. 카카오모빌리티 매각에 반발한 구성원들이 노조 가입으로 이어지며 2~3일 만에 카카오모빌리티 구성원 절반 이상이 노조에 가입했다. 카카오 공동체 중 처음으로 탄생한 과반 노조다. 결국 카카오는 매각 논의를 유보했다. 노조는 올해 초에도 스톡옵션 ‘먹튀’ 논란의 중심에 선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에 대한 카카오 대표직 선임 철회를 이끌어냈다.
박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예전엔 노조를 생산직 전유물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사무직, 전문직 종사자들도 권리 신장이 주로 생산직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았다는 의식이 있다”며 “특히 IT업계라 해도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기 권리에 대한 의사 표현이 명확한 것도 노조 활동이 활발해지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IT기업들은 자회사를 만들거나 스타트업, 중소기업 등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대응해왔다. 해당 사업이 순조로울 땐 문제가 없지만 위기에 처할 경우 매각, 처우 형평성 이슈 등에 휩싸일 수 있다. 향후 IT업계 고용 규모가 커지고 근로자 평균 연령 높아지게 되면 노조 존재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종현 화섬노조 포스코ICT 지회장은 “현재는 업계 인력들이 젊지만 이들도 40대가 되면 퇴직 압박을 두고 노사가 상생을 해야 할텐데 이 과정에서 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지금보다 갈등 구조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며 “게다가 IT업계도 예전과 달리 노조를 통해 회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