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女배우 이정현의 사명감, '리미트' 흥행 이상의 의미

영화 '리미트' 주연 이정현 /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리미트’ 꼭 잘돼야 해요.”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배우 이정현은 특별한 사명감으로 영화 ‘리미트’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여성 주체 작품 기근인 때, 여성 배우 3명이 주연인 스릴러를 들고 나왔다는 책임감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으로 연기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묻어있다.


‘리미트’(감독 이승준)는 경찰 소은(이정현)이 아동 연쇄 유괴사건 수사를 위해 피해자 엄마 연주(진서연)의 대역을 맡게 됐다가 자신의 아이까지 유괴 당하는 범죄 스릴러. 소은은 역으로 자신이 유괴사건의 골든타임 48시간의 타깃이 되면서, 자신에게 협상을 요구하는 범인을 추격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직접 몸을 내던지며 범인들을 상대하는 그에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모성애가 있다.


이정현이 ‘리미트’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여성 주체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스릴러를 좋아하는 그에게도 여자들로 이뤄진 스릴러 시나리오는 데뷔 26년 만에 처음이다. 가장 먼저 캐스팅에 이름을 올린 그는 연이어 연기파 배우 문정희, 진서연이 출연을 확정하며 만족했다.


여성 캐릭터가 주체가 돼 움직인 것이 없었으니까 캐릭터 설정할 때부터 정말 신났어요. 소은이 시나리오에서는 멋있고 무술 잘하고 똑 부러지는 경찰 캐릭터였는데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턱걸이로 공무원 시험에 붙은 허당 경찰로 설정했어요. 또 경찰서에서 왕따도 당하고, 남편이 사고로 죽게 되면서 빚을 많이 남기고 소은 혼자 육아를 하게 되는 설정의 아이디어도 제가 먼저 감독님께 제안했죠. 배우들이 모두 열정이 넘쳐서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했고, 덕분에 캐릭터가 자기화됐어요.”




외적인 설정도 더 과감해졌다. 홀로 생활 전선에 뛰어든 엄마를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예뻐 보이는 건 일부러 피했다. 더 왜소해 보이도록 어깨가 축 처진 점퍼나 목선 뼈가 보이게 깊게 파인 티셔츠를 입는 것은 기본. 워킹맘이라면 화장도 쉽게 못 할 테니 얼굴에 기미가 가득하고 다크서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얼굴에 그려 넣었다. 최대한 현실감 있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다.


“대부분 아이디어는 뉴스나 신문 기사로 접한 이야기예요. 또 아기 때문에 맘카페 가입했는데 거기서 다른 엄마들의 고충도 많이 봤거든요. 친구들도 아기 엄마니까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 점은 재밌을 것 같다’ 싶었고요.”


“착한 시나리오였는데 배우들이 아이디어 내서 세게 바꾸고 했던 거예요. 감독님이 중간자 역할을 잘 해주셨고 생동감이 생겼죠. 잘 돼서 감독판까지 나왔으면 좋겠어요. 선배 형사 성찬(최덕문)이 소은에게 ‘네 남편 때문에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봐줘야 하냐’라고 하는 대사가 있었는데 본편에서는 깔끔하게 쳤거든요. 감독님이 유괴에만 집중해서 속도감 있게 만든 것 같아요.”



영화 '리미트' 스틸 /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유괴를 다룬 범죄 이야기이기 때문에 감정신에 가장 공을 들였고 제일 힘든 부분이었다. 연주의 딸 유괴범을 잡기 위해 수사를 하던 중, 자신의 아이가 유괴됐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집으로 가 아이의 행방을 찾는 신은 보는 이들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때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허당 엄마가 그때부터 마음가짐이 확 돌변하잖아요. 범인이 보낸 아이 손가락을 보고 원래의 소은이었으면 자지러지게 울고 그랬어야 하는데 굳건한 의지 때문에 이성적으로 감정을 누르고요. 동료들에게 들켜버리면 아이를 못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이런 부분은 엄마 관객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개봉 전 시사회를 진행하며 엄마 관객들이 격하게 공감하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 최근에는 실종아동 예방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 실종 아동 부모와의 만남을 가졌다. 이정현은 “영화가 끝나고 ‘내 심정이 저런 심정이라고 표현을 잘해줘서 고맙다’고 우시는데 나도 같이 울었다”며 작품의 의미를 되짚었다.


실제 이정현은 현재 4개월 딸의 엄마가 됐지만, ‘리미트’ 촬영 당시는 임신 전이었다. 경험 없는 엄마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상상에 기댔다. 조카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다큐멘터리나 TV에서 봤던 인물들을 따왔다.


“당시 격하게 오버해서 연기했었죠. 지금의 감정과 비교하면 훨씬 더 배로 속상하지만 영화적으로 표현된 건 비슷해요. 저도 그럴 것 같아요. 끝까지 찾아가서 몸 싸움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정현은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몸을 내던져 모든 액션을 소화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나선 아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테이큰’을 연상하게 한다. 그는 편집실에서 처음 영화를 보고 바로 ‘테이큰’이 떠올랐다며 ‘엄마판 테이큰’이라는 수식어에 만족해했다.


“멋있는 액션은 아니지만 아줌마가 깡다구로 버티는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기를 잃어버린 엄마라면 어떤 엄마들이라도 그렇게 싸울 것 같아요. 대역이 하게 되면 연결이 어색할 것 같아서 다 내가 하겠다고 한 거죠. 다행히 사고 없이 끝나서 타박상 정도만 있었어요.”


빌런 준용(박명훈)과의 산 속 액션신, 혜진(문정희)과의 항구 액션신은 하루 만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모두 며칠 동안 몇 차례 반복 끝에 얻은 것이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정도의 신을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완성본을 보고 문정희 언니와 ‘뭔가 더 싸웠어야 했는데 아쉽다. 뭔가가 더 있어야 할 텐데’ 이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현장에서는 무술감독님이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면 둘이 바로 합이 맞춰서 촬영이 수월하게 끝났었죠. 문정희 언니는 살사를 해서 그런지 합이 좋았어요. 무술감독님이 하는 걸 보고 바로 따라 하더라고요. 촬영 현장은 시간 싸움이니까 부담감이 많거든요. 그런데 상대 배우들이 정말 좋으니 잘 해냈어요. 배우들이 베테랑이 아니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웃음)




문정희, 진서연과 셋이 만나는 신은 거의 없지만 간간이 부딪히는 신이 있을 때면 긴장감이 폭발한다. 이정현은 “문정희는 영화 ‘숨바꼭질’에서 인상 깊었고, 진서연은 영화 ‘독전’을 보고 반했다. 이들과 같이 연기하게 돼 너무나도 좋았고 촬영장에서도 활력이 좋았다”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모두 정말 열정적이에요. 문정희 언니가 눈을 찡그리면서 하는 연기도 본인 아이디어였어요. 그걸 보고 ‘이 역할은 문정희 아니었으면 안 됐겠구나’라고 했었죠. 진서연 같은 경우도 어떻게 보면 평범한 캐릭터일 수 있는데 진서연이 아니면 상상이 안 갈 정도예요.”


다른 배우들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하는 이정현이지만, 그와 함께 작업해 본 이들이라면 모두 그의 팬이 된다. 지난 6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 배우 박해일은 인터뷰에서 “이정현이 ‘바꿔’를 부를 때 부채가 되고 싶었다”고 팬심을 드러내기도. 기라성 같은 감독들도 이정현에게 쉴 새 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올여름 텐트폴 영화 ‘한산: 용의 출현’도 그중 하나였지만 스케줄 문제로 김한민 감독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한 번 하기로 하면 책임감 때문에 잘하려고 많은 고민도 하고, 슛 들어가면 확 빠져 들어가서 연기하니까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계속 찾아주셔야 할 텐데요. 여자 배우들은 생명력이 짧아서 현재도 윤여정, 김혜자 선생님 정도가 주연으로 활동하시잖아요. 저도 그렇게 영향력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 작품이 들어올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갖게 된 공백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순간이었다. 아이를 낳고 3개월 만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열정 덕분이다. ‘헤어질 결심’에 이어 ‘리미트’까지 개봉하며 물꼬를 틀고, 차기작으로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까지 출연을 확정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입덧을 6개월이나 해서 아무것도 못 했어요. 배가 나오고 나서는 활동을 못하니까 너무 우울했고요. 요리하는 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인데 냄새 때문에 못해서 힘들었어요. 일을 정말 많이 하고 싶어서 아기 낳자마자 연 감독님께 ‘역할이 뭐라고요?’라고 연락드었죠. ‘반도’ 때부터 같이 하자고 했었거든요. 강한 액션을 해보고 싶었는데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 보여드릴 것 같아서 정말 좋아요.”(웃음)


“‘리미트’는 많이 부담돼요. 관객분들이 많이 봐주시면 관이 늘어날 것 같아요.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이 작품이 잘 돼야지 비슷한 여성물들이 생산이 될 수 있잖아요. 여자 배우들이 남자 배우들 보다 설자리가 많이 없어요.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많은데 앞으로 다 같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