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개항로, 60년 노포들 협업해 생명 불어넣었죠" [시그널]

■서울 부동산포럼 제60차 세미나
이창길 개항로 프로젝트 대표 발표
서울 임대료 폭등에 찾은 인천 개항로서
전국 최초 '쫄면' 만든 광신제면 등 협업

"카피(복제)가 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가령 사람들이 좋아하는 카페를 만들면 비슷한 곳이 곧장 또 생겨나지요. 지금처럼 임대료가 치솟는 상황에서는 견디기가 어려워요. 그 장소가 가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강조하면 사람들은 거리가 멀어도 기꺼이 찾아옵니다. 과거의 번영은 뒤로 하고 요양병원이 들어서던 인천 개항로에 다시 사람들이 몰려든 것처럼요."



이창길 개항로프로젝트 대표

개항로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이창길 대표는 지난 25일 강남 스파크플러스에서 열린 사단법인 서울부동산포럼 제 60차 오찬 세미나에서 철학과 시간이 담겨 복제가 불가능한 콘텐츠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위기를 넘어선 개항로 프로젝트의 사례를 소개했다.


인천 개항로는 1883년 개항 이후 100년이 넘도록 번화한 인천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인천 지역에 매립지 개척이 잇따르면서 몇몇 노포들만 남은 채 쇠락해갔다. 이창길 대표는 2017년 디자이너·셰프·사업가 등 15여명의 팀원을 모아 개항로 일대를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동인천역 인근 배다리 사거리에서 애관극장까지 이어지는 약 600m 거리가 대상이다.


이 대표가 인천 개항로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돈이었다. 장사가 잘 되서 상권이 형성되도 임대료가 폭등하면 결국 쫓겨날 수밖에 없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원주민 유출 현상)이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그는 개항로에 위치한 건물 22채를 매입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평당 약 600~800만 원으로 서울 시내 건물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었다. 그는 “영국 유학 당시 벽에 붙여놓은 영국 지도를 보며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며 "리버풀 위치가 인천인데, 실제로 글로벌 도시인 리버풀을 비롯해 런던과 뉴욕, 요코하마 등은 모두 과거 공장이 빼곡하던 산업지대였던 만큼 인천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천광역시의 인구는 약 300만 명이며 서울과 수도권 등의 배후인구도 200만 명에 이른다.



개항로의 옛 산부인과를 개조한 라이트하우스 카페

요양병원이 들어서던 동인천역 인근 조용한 거리를 사람들이 몰려드는 상권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이 대표가 가장 먼저 만든 것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카페였다. 한 대형 산부인과를 매입해 개조한 카페인 '라이트하우스'는 과거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편 전구 2000개로 연출돼 공간별로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는 "과거의 것을 지켜내면서 거기에 현대 사람들이 원하는 컨텐츠를 조합했다"며 "철학과 시간은 변하지 않는 만큼 개항로만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개항로 맥주 포스터

하얏트 인천과 파라다이스 호텔 등 5성급 호텔을 비롯해 인천 지역 250여곳에서 판매되고 있는 '개항로 맥주' 역시 이 대표가 개항로 인근 노포들과 손잡고 콜라보레이션한 결과다. 맥주 라벨에 쓰여진 글씨는 개항로에서 1968년부터 목간판을 만들고 있는 노포 전원공예사의 장인 전종길 씨의 작품이다. 광고 모델은 과거 개항로 극장에서 간판을 그리던 페인트 가게 사장님인 최남선 씨가 섰다. 이 대표는 "같은 글자 디자인이라도 다른 사람이 쓰면 레트로에 불과하지만 개항로에서 60년 가게를 운영한 장인이 쓰면 역사가 담긴 클래식이 된다"며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역사성과 지역성을 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전국에서 최초로 쫄면을 만든 곳으로 유명한 광신제면과 함께 면을 만들어 운영하는 '개항면', 전원공예사에서 목간판을 제작한 '개항로 통닭' 등 개항로프로젝트의 많은 가게들이 노포와 협업해 운영 중이다.




이 대표는 "상업용 부동산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며 "소비에서 경험으로 오프라인 공간의 트렌드가 바뀌어 가는 만큼 누구도, 어디서도 대체하지 못하는 독보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가 줄어들고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소비 행태가 변화하는 만큼 이 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유니크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최고로 잘 만들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홍보하면 된다"며 "콘텐츠가 있으면 드러나는 시대"라고 덧붙였다.


한편 사단법인 서울부동산포럼은 부동산 개발 및 금융, 마케팅, 자산 관리 등 업계 오피니언 리더와 부동산 학계 교수, 법률, 회계, 감정평가 업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순수 비영리 단체다. 박래익 그레이프라운지 대표가 회장을 맡고 있다. 2003년 63명의 회원으로 시작해 현재 약 200명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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