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감을 얻은 대신 스토리를 잃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만 남고 유기성은 사라졌다. 메시지 전달의 한계를 경험한 영화 ‘리미트’다.
‘리미트’(감독 이승준)는 경찰 소은(이정현)이 아동 연쇄 유괴사건 수사를 위해 피해자 엄마 연주(진서연) 대역을 맡게 됐다가 자신의 아이까지 유괴 당하는 이야기. 소은이 유괴사건의 골든타임 48시간의 타깃이 되면서, 협상을 요구하는 범인을 추격하는 것이 큰 줄기다.
작품은 여성 주체 스릴러라는 큰 의미를 가진다. 이정현, 문정희, 진서연 세 주연 배우가 입 모아 강조한 부분이다. 앞서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콜’ ‘앵커’ 등이 여성 스릴러로 이름을 올렸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다양성이 부족한 한국 영화계에서 ‘리미트’의 도전은 외연을 확장시키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액션을 가미해 ‘엄마판 테이큰’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것도 인상 깊다. 할리우드 영화 ‘테이큰’은 전직 비밀요원이 납치된 딸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는 내용으로 결이 비슷하다. 다만 리암 니슨이 화려하고 통쾌한 액션을 선보였다면, 이정현은 허당인 소은이 절절한 모성애 하나만으로 초인적인 힘을 내는 것에 집중했다.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전달하고픈 것은 희미하다. 스토리 라인이 약한 결과다. 속도감에 포인트를 두다 보니 인물들의 전사를 과감하게 자르고 디테일을 놓쳤다. 오롯이 소은이 아들을 구출하는 뼈대만 만들고, 배우들이 직접 아이디어 내면서 살을 붙인 캐릭터의 서사는 증발한 것. 유괴 사건에 연루된 소은, 혜진, 연주의 구도가 산만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이유다.
캐릭터 활용도 아쉽다. 절대적 빌런 준용(박명훈), 명선(박경혜)은 더벅머리, 섬뜩한 눈빛 등 비주얼적인 면만 강조됐다. 남다른 애틋함이 있는 남매인 혜진과 준용의 서사, 무자비한 범죄자가 된 준용과 명선의 이유 등을 가늠할 수 없어 매력이 반감된다. 명선의 뜬금없는 총격신은 전개에 의문을 주는 트리거다.
87분의 러닝타임을 이끈 건 배우들의 연기다. 이정현은 처절하게 악을 쓰며 아들을 찾으려는 엄마의 마음을 직접 구르고 부딪히며 몸으로 증명했다. 어렴풋한 스토리에서 문정희의 존재감은 놀랍다. 푸석푸석하고 새치 가득한 머리, 거친 피부결, 찡그린 눈은 과장되기 보다 미스터리한 인물의 서사를 표현하는 외적 설정으로 이해된다. 촘촘하게 연구한 연기를 보는 재미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