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만에 군에 의해 실족사로 은폐된 죽음의 진상이 밝혀졌다.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6월 제52차 정기회의에서 진상 규명한 뒤 이의신청 기간이 지난 사건 가운데 병영문화 개선과 군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3건을 30일 공개했다.
1970년 사망한 김 모 상병은 휴가 후 복귀 중 음주 상태에서 달리는 열차에 탑승하려다가 실족해 숨졌다고 보고됐다.
그러나 위원회의 조사로 김 상병은 지휘관의 지속적인 금품 강요에 시달리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는 휴가 때 고가의 의류와 어항을 사 오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이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처하자 결국 달리는 열차에 뛰어든 후 숨졌다.
김 상병은 음주 상태가 아니었고, 실족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군은 이를 숨긴 채 거짓 사실관계를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임병 구타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례도 확인됐다.
1987년 숨진 이 모 상병은 저녁 식사 후 영내 개울에서 목욕하다가 찬물로 인한 쇼크로 구토 중 기도에 이물질이 들어가면서 기도가 폐쇄돼 질식사했다고 기록됐다.
하지만 이 상병의 후임은 '사망자가 선임병 구타로 숨졌는데 당시는 군사정권 말기의 민감한 시기여서 군이 사건을 단순 사고로 은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위원회에 제보했다.
조사 결과 이 상병은 선임병이 후임병들을 집합시키고 군기를 잡던 도중 선임병으로부터 가슴 부위를 주먹으로 맞고 쓰러졌다. 그는 이후 ‘미주신경성 쇼크로 인한 급사’로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군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도 동료 부대원들에게 진상을 함구할 것을 지시했다. 유가족에게는 '구타에 의한 사망으로 확정되면 예우를 받을 수 없다'는 말로 사건을 덮도록 회유했다.
이밖에 한 장병이 군의 세심하지 못한 행정 조치로 인해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됐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모 이병은 1994년 철책 근무 중 벙커에서 총기를 사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군 기록에 기재됐다.
그러나 이 이병은 좌우 부동시, 야맹증 등으로 정상적 복무가 힘든 상태였다. 위원회는 그를 실탄이 지급되는 최전방 철책에 배치한 군의 부적절한 행정 조치가 사망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국방부 장관에게 세 사건 사망자의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를 요청했다.
위원회에 접수된 군 사망사고는 계속해서 규명 중이다. 위원회는 지난 29일 제54차 정기회의에서 진정 사건 40건을 종결했다. 이로써 접수한 1787건 중 1276건을 종결했고 나머지 511건을 처리 중이다.
54차 회의에서는 또한 1997년 병사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중대장한테는 가혹행위를 당하다가 극단적 선택에 이른 부사관 사건 등의 진상이 밝혀졌다. 종결된 사건들은 이의신청 기간이 지나면 위원회 판단에 따라 공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