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박은빈, 이 세상 외뿔 고래들에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박은빈 /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면서 강렬하다. 남들과 조금 달라서 이상해 보일지라도,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거다. 이는 배우 박은빈의 힘 있는 목소리와 만나 시청자들에게 짙은 호소력으로 다가간다.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극본 문지원/연출 유인식)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의 대형 로펌 생존기다. 우영우는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력의 소유자로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할 만큼 명석한 두뇌를 자랑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당연한 세상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그에게 낯설고 어렵다. 엉뚱하고 솔직한 그의 모습은 때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틀에 박힌 규칙들을 새롭게 보게 한다.


박은빈은 처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제안받았을 때, 출연을 고사했다. 좋은 작품이 될 거라는 예감은 왔지만, 쉬운 마음으로 접근해선 안 될 것 같았기에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는 우영우를 어떤 톤으로 표현해야 될지조차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그러나 '박은빈 아닌 우영우는 상상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제작진이 꾸준히 그를 설득하며 기다렸고, 지금의 우영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시놉이나 대본을 볼 때 머릿속으로 영상화를 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이 캐릭터를 어떤 느낌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왔죠. 내가 이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구나를 먼저 판단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전혀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처음에 고사했을 때는 '다른 좋은 배우들이 한다면 언젠가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이었어요."


"진심으로 왜 내가 우영우여야만 하는지, 왜 다들 내가 잘 할 거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안 들었어요. 고사를 하다가, 작가님과 감독님을 직접 뵙고 거절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함께 만들 기회를 주지 않겠냐'고 말씀해 주셨고, 전 이런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작품에 임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 / 사진=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어렵게 작품을 수락한 박은빈에게 주어진 시간은 2주 남짓이었다. 드라마 '연모' 촬영이 끝나고 바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준비해야 됐던 그는 절박한 마음이었다. 촉박한 시간 속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빠르게 캐릭터를 잡을 수 있는 최단 경로를 잡은 것이었다. 평소 혼자 캐릭터를 구축하던 그는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우영우를 만들어나갔다.


"개인적으로 교과서로 공부하는 게 익숙한 저는 책으로 자폐스펙트럼을 배웠습니다. 우영우는 딱 봐도 이상해 보여야 되는데, 변호사로 일하면서 이상하게 보이지 않아야 되는 모순적인 특성을 지녔어요. 이런 부분에 중점을 두면서 공부했죠."


박은빈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배우로 안은 숙제는 시청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거였다. 시청자들이 우영우를 응원하게 만드는 게 박은빈의 과제이자, 극에서 해야 될 몫이었다고. 그러나 박은빈은 개인적으로 우영우는 응원하지 않아도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제가 생각한 우영우는 어른스러워요. 저보다 훨씬 언니 같은 면이 있어요. 우영우는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이에요. 두렵고 불편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항상 먼저 해보겠다고 하고, 용기를 내죠. 이런 우영우에게 있는 그대로 사람을 받아들이고, 자기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아야 된다는 걸 배웠어요."


박은빈은 우영우 캐릭터를 잡을 때 실제 자폐인을 모방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실제 인물을 모방한다면, 그들의 실생활을 수단 삼아 연기하는 게 될까 봐 최대한 배제하려고 한 거다. 자연스럽게 자폐인과 그의 가족에게 상처가 되지 선도 고심하게 됐다.


"증상을 구현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 드라마가 전달할 메시지가 흐려질까 봐 걱정이 됐어요. 그러다가 제가 찾은 답은 '자폐스펙트럼의 증상은 다양하고, 사람의 양상도 다양하다면 우영우를 있는 그대로 우영우로 표현하면 되겠다'였어요. 그래서 우영우가 세상을 마주하고 과정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데 중점을 뒀죠. '이 과정을 진실되게 그리면 불쾌한 부분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마음이었어요."




산 넘어 산이라고, 우영우 캐릭터를 만든 박은빈 앞에 놓인 건 엄청난 대사량이라는 과제였다. 우영우는 어려운 법 조항을 빠르게 읊으면서 극의 전체를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 박은빈은 다행히 드라마 '이판사판'에서 판사 역할을 경험해 봤기에 법 조항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그러나 속사포처럼 펼쳐지는 많은 양의 대사는 어려웠던 작업으로 기억될 거다.


"법정신뿐 아니라 고래 이야기를 할 때 등등 카테고리 별로 대사가 정말 많았어요.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드라마를 시작했고, 심지어 아직 우영우와 친해지지 않았는데 법정신까지 추가돼 중압감의 밀도가 엄청 높았습니다. 특히 1회 법정신은 신입 변호사 우영우가 처음으로 맡은 사건이라 긴장감이 최고조라는 설정이었어요. 제가 굳이 긴장감을 설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폐부에 스며들 정도로 떨렸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방송 내내 엄청난 시청률과 화제성을 자랑했다. 작품성이 좋을 거라고 판단했지만, 신생 채널에서 방송된 만큼 이렇게 높은 시청률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상한 변호상 우영우'는 오롯이 작품성과 입소문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셈이다.


"처음부터 ENA였던 건 아니었어요. 넷플릭스 동시 방송이라고 알고 있던 상황에서 ENA로 가게 됐다는 걸 알게 됐죠. 채널 쪽에서는 3%만 나와도 대박이라고 내부 평가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 애초에 시청률이 목표였던 사람도 아니고, 대중의 반응은 대중의 선택에 맡겨야 되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는 없었어요."


"진정성에 있어서는 자신 있었지만, 제가 모르는 감수성이나 무지했던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많은 분들이 봐주시니까 무섭기도 했어요. 그만큼 가볍지 않고 진중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했죠. 높은 시청률은 저한테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우리 팀에게 보내준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크게 도취돼 있지 않았습니다."




시청률에 대한 기대는 없었지만, 전 세계로 방송된 만큼 자폐인 커뮤니티가 활발한 미주 쪽 반응은 궁금했다. 한국에서 자폐인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을 때,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더 활발한 갑론을박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자폐인은 남성 비율이 높아서 주로 남성 자폐인 캐릭터를 다룬 작품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해외에서는 '한국에서 여성 자폐인을 1인칭으로 내세워서 하는 드라마가 있다니'라며 놀라워하더라고요. 작가님도 영화 '증인'처럼 비장애인을 통해 자폐인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이 시선을 넘어서 우영우가 직접 소통하는 게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결국 작품의 메시지로 귀결돼요. 최종회에서 우영우가 인사 청문회 들어가기 전인 엄마 태수미(진경)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어요. 흰고래 무리들 사이에 살아가는 외로운 외뿔 고래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게 내 삶'이라고 말해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이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우영우가 자체가 메시지예요. 이 세상 모든 외뿔고래들에게 하는 말이죠. 이 세상 자폐인에게 뭐라고 얘기할 순 없지만, 흰고래 무리와 살아가는 외뿔고래가 많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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