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폭등기에 상승을 이끌었던 아파트 단지가 최근 몇 달간 이어지는 관망세에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강남 4구’로 불리던 서울 강동구 고덕단지를 대표하는 아파트 ‘고덕 아르테온’ 국민 평형(전용 84㎡)에서 5억 원이 하락한 매매 거래가 체결됐다. 주거 수요가 탄탄한 지역으로 꼽히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과 동작구 흑석동 등 핵심 입지는 물론 수도권 외곽에서도 지난해 기록한 최고가에서 4억~5억 원이 떨어진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일부 단지에서는 최근 실거래에 비해 호가를 높여 집주인들이 ‘버티기’에 들어서는 모습 또한 포착되고 있지만 시장의 전반적인 하락 흐름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 전용 84.97㎡는 올해 7월 18일 14억 8000만 원(18층)에 중개 거래됐다. 같은 34평형인 84.93㎡가 19억 8000만 원(11층)에 거래된 시점이 4월이기에 불과 3개월 사이 실거래가가 5억 원 하락했다. 최고가 거래가 나온 동은 단지 인근 명일근린공원에 바로 맞닿아 있어 소위 ‘숲세권’ 생활을 누릴 수 있지만 평면 구조가 수요가 많은 판상형이 아니다. 최저가 거래가 나온 주택형의 경우 판상형 평면 구조를 가지고 있어 두 주택형 간 시세는 비슷하다는 것이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
이번 하락 거래는 지인 간 거래 등 ‘특수 거래’가 아닌 정상 거래인 것으로 전해졌다. 단지 사정에 정통한 인근 공인 중개 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이번 거래는 일시적 2주택자가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급급매’로 매물을 내놓으면서 가격이 크게 하락한 건”이라며 “가격을 소폭 낮추는 것으로는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5억 원가량 호가를 내렸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이나 동작구 흑석동 등 ‘준강남권’으로 평가 받는 지역에서도 최고가 대비 가격이 4억~5억 원가량 떨어진 거래는 다수 포착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84.8㎡는 지난해 10월만 해도 27억 원(14층)에 거래됐지만 올 7월 22억 5000만 원(7층)에 매매 계약이 체결되며 9개월여 만에 가격이 4억 5000만 원 하락했다. 동작구 흑석동에서는 ‘아크로리버하임’ 84㎡ 가격이 올 2월 25억 4000만 원(5층)에서 19억 8000만 원(1층)으로 떨어졌다. 이들은 모두 공인중개사 주관 아래 이뤄진 중개 거래다.
잠실엘스는 최고가 거래와 최저가 거래가 모두 한강이 보이는 같은 동에서 나왔다. 층수나 인테리어 상태 등의 차이는 있으나 인근 공인 업계에서는 최근 하락 폭이 여전히 크다고 평가했다. 단지 사정에 밝은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최저가로 거래된 물건은 한강 뷰가 가능한 집인데도 급매로 나왔다”며 “일시적 2주택자가 신규 주택을 매입할 때 대부 업체에서 과도하게 대출을 일으켜 대출 상환 부담에 집을 급하게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2020~2021년 50% 가까이 뛰었던 의왕·시흥·오산·송도 등 경기·인천에서도 아파트 값은 올해 들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단기간 급등한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고점 인식 및 금리 인상에 따른 매수세 위축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주 발표된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경기 의왕시 아파트 값은 2.9% 하락해 부동산원이 주간 매매 가격 변동률을 공개하는 수도권 78개 시군구 가운데 여섯 번째로 큰 하락률을 보였다. 의왕시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아파트 값이 누적 53.0% 상승해 전국에서 오름세가 가장 가팔랐던 곳이다.
지난 2년 동안의 상승률과 비교하면 최근 하락률이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지역 내에서는 지난해 신고가에서 가격이 수억 원 떨어진 실거래가 다수 포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6월 16억 3000만 원에 거래되며 화제를 모았던 의왕시 포일동 ‘인덕원 푸르지오 엘센트로’ 전용 84.98㎡는 올 6월 13억 원에 거래된 데 이어 7월에는 11억 9000만 원까지 떨어졌다. 1년 사이 실거래가가 4억 4000만 원(27.0%) 하락한 것이다. 단지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거래된 건은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부 매물 호가는 12억 원까지 내려온 상태”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지난해 6월 9억 1000만 원(8층)에 손바뀜된 의왕시 내손동 ‘인덕원센트럴자이’ 59.95㎡는 올 7월 7억 8000만 원(16층)까지 1억 원 이상 떨어졌다. 인근 ‘e편한세상 인덕원 더퍼스트’는 지난해 10월 12억 5000만 원(19층)으로 신고가를 썼지만 이후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해 올 8월에는 무려 5억 5000만 원(44.0%) 내린 7억 원(14층)에 거래됐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단기간에 가격이 급등한 지역에서 매수 부담감 또한 커지면서 하락 폭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호황기 당시 가파른 상승률을 보였던 수도권 여타 지역에서도 하락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020년~2021년 48.9%로 전국 4위 상승률을 기록한 경기 시흥시 아파트 값은 올해 들어 3.7% 하락해 수도권에서 세 번째로 많이 떨어졌다. 이외에도 호황기에 50.1% 올라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오른 인천 연수구 아파트 값은 올해 2.9% 떨어져 수도권 내 하락률 5위를 기록했으며 전국 3위 상승률(50.0%)을 보인 경기 오산시 아파트 가격은 올해 수도권에서 세 번째로 가파르게 하락(-3.2%)하고 있다. 올해 수도권 하락률 1·2위 지역인 경기 화성시(-4.0%)와 수원 영통구(-3.7%) 또한 호황기에는 각각 35.5%, 43.0% 급등했던 곳들이다.
송승현 도시와 경제 대표는 “지난해 급격하게 가격이 오른 지역들은 수도권 외곽에 자리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늦게 오른 지역들”이라며 “수요가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저금리 유동성이 빠지고 매수세가 강하게 위축되자 가장 먼저 조정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울경제가 지난달 29일 KB국민은행 선정 전국 시가총액 상위 50개 단지 가운데 올 7~8월 거래가 있었던 28개 단지의 실거래 59건 및 매물 호가를 전수 조사한 결과 최근 실거래 가격에 비해 호가가 평균 1억 원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단지의 평균 실거래 가격은 22억 7432만 원이었지만 평균 매물 호가는 24억 1887만 원으로 1억 4455만 원 높았다.
이 같은 현상은 실거래 59건 중 41건(69.5%)이 직전 거래 대비 낮은 가격에 체결된 ‘하락 거래’인 가운데 나타나 주목된다. 전반적으로 거래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데도 매도자들이 호가를 내리지 않는 ‘버티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개별 단지를 살펴봐도 이 같은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언급된대로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 전용 84.93㎡의 실거래가는 올해 4월 19억 8000만 원(11층)에서 8월 14억 8000만 원(19층)으로 5억 원 하락했지만 같은 주택형 호가는 현재 16억 2000만~20억 원 선에 형성돼 있다. 단지 인근의 A공인중개사는 “최근 실거래가 특수 거래라고 생각해 시세로 받아들이지 않는 집주인이 적지 않다”며 “급할 것이 없는 일부 매도자는 최고가 거래보다 높은 가격에 매물을 내놓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호가 버티기’ 현상은 일부 단지에서 신고가 거래가 나오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99.99㎡는 올해 6월 신고가인 36억 원(32층)에 거래된데 이어 7월 37억 3000만 원(31층)에 매매돼 최고가 기록을 새로 썼다. 신고가가 나오면서 일부 매물은 현재 최근 거래 가격보다 높은 40억 원에 나와 있다. 인근 B공인 관계자는 “매수 문의가 많지는 않지만 하락기에도 핵심 지역 주요 단지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집주인이 많다”며 “최근 신고가 거래까지 나오면서 호가는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흐름에도 결국 최근의 실거래 하락 흐름에 따라 호가 또한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전문가 사이에서는 힘을 얻고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금리라는 변수가 시장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실거래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결국 매물 가격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며 “아무리 핵심 지역의 주요 단지라도 전체 시장 흐름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택 매수 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반면 일부 단지에서는 호가 ‘방어전’에 나서며 서울 부동산 거래는 사상 최악의 ‘빙하기’에 접어드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의 8월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지수가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실제 거래량 통계에서도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전체 가구의 0.01%만이 거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최소 올해 하반기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9일 KB국민은행이 발표한 8월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이번 달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지수는 0.7로 지난달(0.9) 대비 0.2포인트 하락했다. 매매거래지수는 KB국민은행이 표본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거래 활발함의 정도를 설문 조사해 수치화한 것이다. 0.0~200.0의 범위 내에서 값이 낮을수록 거래가 한산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국 주택 시장을 강타한 2008년 11~12월 당시 최저 수준인 1.1을 기록한 후 약 15년 동안 1.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지난달에 이어 두 달 연속 1.0을 밑돌며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실제 거래량을 보여주는 통계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9월 1일 기준 8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20건에 그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른 서울 내 재고 주택 물량 181만 8214가구의 0.02%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 5000가구 중 1가구만이 거래되고 있는 셈이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부동산 거래 신고 기한은 30일로 이달 거래량은 다음 달 말까지 집계되면서 다소 늘어나겠지만 여전히 역대 최저 수준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 올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의 경우 이날 집계 기준 639건으로 올해 2월 기록한 역대 최저치(820건)를 기록을 경신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의 가치를 매도자는 신고가를 기준으로, 매수자는 최근의 하락세를 토대로 바라보며 양측 간 시각 차이가 큰 상황이 거래 절벽의 핵심 요인”이라고 짚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주택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무주택자의 신규 수요는 물론 1주택자의 이동 수요가 발생해야 하는데 신규 수요 자체가 워낙 없어 기존 주택 처분이 어려우니 1주택자의 이동 또한 막힌 상황”이라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강화된 대출 규제와 더불어 금리 인상이 시장을 규정짓는 지금의 상황이 최소한 올해 하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