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계부채 증가 부담에도…"경착륙땐 더 큰 경제 쇼크" 특단 처방

■'15억 주담대' 족쇄 푼다
집값 폭락→소비 위축→고용투자 감소 '악순환' 우려에
중개업소·포장이사·인테리어 등 부동산 후방산업도 흔들
집값 자극할까 미뤘지만…거래절벽 계속되자 결국 칼 꺼내

서울 잠실 일대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에 살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주부 김희정(40) 씨는 최근 육아 부담을 덜기 위해 친정 부모님과 합가(合家)하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식구가 늘어 방 4개 이상 아파트가 필요했지만 서울 시내에서는 이런 조건을 갖춘 15억 원 이하 아파트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투기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1주택 실수요자에게 대출을 한 푼도 안 내준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고가 주택이 15억 원이라는 기준도 현실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가 15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금지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나선 근간에는 시장 질서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담겨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담보 가치만큼 돈을 빌려주고 여기서 합리적인 이자를 받는다는 게 금융업의 본질인데 고가 주택이라고 해서 대출을 금지한다는 것 자체가 반(反)시장 정책이자 문재인 정부의 무리수였다”고 지적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7월 보고서에서 “주담대 15억 원 금지 규제 때문에 15억 원 이하 주택으로만 거래가 몰리는 시장 왜곡 현상이 일어나 오히려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속출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판단에도 그동안 대출 규제 완화를 미뤘던 것은 가까스로 잡히기 시작한 집값이 자칫 들썩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지난해 1.0%에서 2.5%로 1.5%포인트나 밀어올린 데 더해 내년 이후 경기 침체 우려마저 커지는 등 정책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집값 상승이 아니라 집값의 급격한 하락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일 기준 서울 아파트 주간 매매수급지수는 81.8로 2019년 7월 이후 3년 2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 지수는 기준선인 100보다 낮을수록 시장에 집을 매도하겠다는 사람이 사겠다는 사람보다 많다는 뜻이다.




부동산 거래는 ‘빙하기’ 수준으로 얼어붙었다. 7월 기준 서울 전체 아파트 거래량은 총 639건으로 전년 7월(4679건) 대비 86% 넘게 급감했다. 아직 신고 기일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8월 아파트 거래량은 372건까지 하락한 상태다. 용산구의 전체 아파트 거래량은 고작 3건(8월 기준)에 불과하다. 완판 행진을 이어가던 서울 분양 시장도 최근 비(非)선호 지역을 중심으로 청약 미달이 나타나는 등 침체 기조가 역력하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에 경착륙이 일어나면 경기 전반에 강력한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금리 상승세 속에서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집값까지 폭락할 경우 소비심리마저 위축돼 경기가 얼어붙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부동산 거래가 위축되면 공인중개업소를 시작으로 인테리어·포장이사·가전 업계에 이르기까지 후방 산업들이 연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소비심리를 보여주는 소매판매동향을 보면 7월 기준 소매 판매는 전달 대비 0.3% 감소해 5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1995년 통계 작성 이후 27년 만에 최장 하락 기록을 갈아치웠다.


민간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집값은 완만히 하락하는 게 최선의 경로”라며 “특히 우리나라처럼 부동산에 대한 자산 쏠림 현상이 큰 나라에서 집값 폭락이 일어나면 ‘소비 위축→기업 매출 감소→ 투자 및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 최악의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우리 경제의 또 다른 리스크 요인인 가계 부채가 이번 규제 완화에 따라 자극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6월 말 기준 가계 신용 잔액은 1869조 4000억 원으로 3월 말 대비 6조 4000억 원 더 늘었다. 최근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향후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대출 규제가 풀린다고 해도 최근 금리가 오르고 있다는 점과 강력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집값이 고점을 지나고 있다는 시장 인식 등을 감안하면 주담대가 급격히 늘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1주택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시장을 정상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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