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군에 거주하는 70대 A 씨는 올해 초 한 태양광 설비 업체에서 귀가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한국에너지공단의 금융 지원을 받아 3000만 원 규모의 태양광발전 설비를 설치하면 한국전력에서 20만 원, 한국중부발전에서 20만 원이 수익으로 들어온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A 씨는 투자 이후 망연자실했다. 공단에서 지원을 받기는커녕 본인 명의로 캐피털 업체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수익도 예상보다 적은 20만 원 안팎에 그쳤기 때문이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태양광 설비 사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투자금 자체를 목적으로 가정용 발전 시설 투자를 유도하는 식이었지만 최근에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노린 사업자용 시설 투자를 요구하는 방식이라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특히 REC 현물가격이 지난해보다 2배 넘게 뛰는 등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5일 서울경제의 취재 결과 A 씨 명의로 등록된 태양광발전 시설은 사업자용인 ‘한국전력 PPA’ 방식으로 확인됐다. 민간 태양광발전은 크게 자가 주택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가정용 시설과 전기를 외부에 팔 수 있는 사업자용 시설로 나뉜다. 사업자용 시설은 전기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임을 인증하는 권리인 REC도 함께 생산된다. REC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에 따라 총 전력 생산량의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발전으로 채워야 하는 발전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생산할 수 없을 때 주로 사용된다. 탄소배출권처럼 REC를 구매해 신재생에너지발전 할당량을 채우는 방식이다. A 씨의 수익 모델 역시 한전에는 전기를 팔고 중부발전에는 REC를 팔아서 나오는 구조였다.
REC는 현물가격이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오르는 등 최근 들어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REC 현물가격은 지난해 8월 2만 9000원대로 저점을 찍은 뒤 지난달 6만 4000원대로 치솟았다. 업계에서는 REC 수요가 급증한 이유가 문재인 정부 당시 RPS 비율이 대폭 상향 조정되고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기업이 많아진 데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구글·BMW 등 370여 개의 글로벌 기업이 RE100에 참여했고 국내도 SK그룹·현대자동차 등 22개사가 RE100에 가입했다. 삼성전자 역시 RE100 가입을 추진하는 등 RE100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문제는 REC 품귀 현상이 지속되면서 A 씨 같은 피해 사례가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REC를 생산하기 위한 사업자용 태양광발전 시설은 가정용 시설보다 규모가 커 피해 정도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는 “가정용 발전 시설은 설치 비용이 최대 500만 원에 그치지만 사업자용은 억 단위까지 규모가 뛴다”고 설명했다. 일부 노년층 사이에서는 급등한 REC 현물가격에 ‘REC 재테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업자용 태양광 시설 투자는 투자 개념에 가깝기 때문에 소비자 피해를 구제받기 어려워 보인다”며 “금융 상품도 아니어서 금융 투자자로서 보호받을 길도 마땅치 않은 만큼 신중하게 따져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