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증시가 경기 침체, 통화 긴축, 에너지 대란 등 ‘트리플 악재’ 우려로 휘청거리면서 서학개미들의 인기 종목인 명품주들의 주가 역시 맥없이 하락하고 있다. 이에 국내 투자자들은 보유 중이던 명품주를 비롯해 유럽 주식에 대한 순매도를 가속하며 유럽 시장에서 서둘러 발을 빼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유럽 지역의 경기 침체 가능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으로 인한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위험 자산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한편 튼튼한 실적이 뒷받침되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등 초고가 명품 기업들의 경우 유로화 약세, 저평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이 투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8월 국내 투자자들은 유럽 증시에서 1596만 달러(약 219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는 올해 월간 최대 순매도 폭이다. 서학개미들은 상반기 유럽 증시에 대한 순매수세를 꾸준히 유지했지만 6월(1256만 달러 순매도) 들어 처음으로 순매도 전환했다. 이후 진정되는 되는가 싶었던 매도세는 침체 우려가 깊어진 8월 들어 그 규모를 큰 폭으로 키운 후 9월 들어서도 순매도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 연말 유럽의 경기 침체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기업 이익이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자 비교적 튼튼한 펀더멘털을 자랑하는 유럽 명품주들 역시 낙폭을 늘리는 모습이다. 연초 731유로(약 100만 원) 수준이던 루이비통 주가는 5일 종가 기준 635달러로 14% 가까이 하락했다. 에르메스(RMS) 역시 주가가 같은 기간 1542.5유로에서 1255유로로 18.6% 하락했다. 이 기간 까르띠에·반클리프아펠·몽블랑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리치몬트그룹(CFR)과 구찌·생로랑·보테가베네타 등을 보유한 케링(KER)의 주가 하락률은 23~31%에 달한다.
명품주들의 주가 하락 폭이 커지자 국내 투자자들 역시 보유 중이던 종목들을 팔아 치우는 모습이다. 유럽 증시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순매도세가 깊어진 8월 루이비통과 에르메스 등은 월간 거래 규모가 30만 유로 이상인 국내 증권사 2곳 이상의 창구에서 유럽 주식 순매도 상위 7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증권가에서는 유로존의 물가 상승률이 사상 최고치 경신을 지속하고 있어 유럽중앙은행(ECB)이 한동안 고강도 긴축 기조를 이어나갈 가능성을 고려하면 유럽 지역에 대한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이익 증가세를 이어가는 등 견조한 펀더멘털을 유지하고 있지만 주가가 조정 받은 초고가 브랜드 회사는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이 경기 상황에 영향을 덜 받는 튼튼한 수요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점, 러시아발 에너지 대란 이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점 등이 긍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실제로 사치재 시장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진 올해에도 6%대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적 부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올 2분기 루이비통·케링·에르메스 등은 사치품 수요 증가세 및 환 효과에 힘입어 실적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들 업체들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0~30%대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에 반해 이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0~20배 선으로 떨어져 저평가 매력이 커졌다는 판단이다. 심지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유럽 명품주들의 경우 큰 타격을 줬던 중국 록다운발 수요 감소세가 완만하게 회복될 것으로 전망되며 환율 조건도 긍정적”이라며 “지난해 말 대비 PER 하락이 큰 종목들 위주로 투자 매력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