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3개 과목이나 맡고 있는 탓에 일주일에 사흘은 수업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죠. 결국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더군요. 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습니다.”
80세의 고령에 박사 학위를 딴 김송고(사진) 포항대 교수는 경북 포항대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논문을 일흔아홉 번이나 고쳤다”며 이같이 말했다.
방송통신대에서 학사, 동국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노인의 성 생활 및 성 태도가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우울의 매개 효과’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대구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과정에 들어간 지 20년, 수료한 지 18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현재는 포항대 사회복지과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고령의 노인들은 공부할 때 눈이 침침하거나 체력이 못 받쳐주는 등 신체적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김 교수는 다르다. 아직도 공부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기억력 감퇴 같은 경험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집중하고 머리를 쓰면 오히려 머리가 또렷해지는 느낌”이라며 “이 때문에 박사 학위 받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이 없었다고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순탄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이전에도 네 번이나 심사에 도전했다.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한 것도 걸림돌이었다. 먹고살려면 계속 논문만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시간강사라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결국 박사의 꿈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가 다시 도전에 나선 것은 2년 4개월 전. 박사 학위 없이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어떻게든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계속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해줬습니다. 아이들도 못다 한 꿈을 이뤄보라며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었지요. 가족들의 지원과 성원이 없었다면 박사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논문을 쓰는 과정도 험난했다. 실태 분석을 위해서는 설문 조사를 해야 했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제대로 된 표본을 얻기 힘들었다. 실제로 500명을 목표로 진행한 설문 참여자는 절반인 250명 정도밖에 모이지 않았다.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 교수는 “설문 항목 중 삶의 질을 알아보기 위해 용돈을 얼마나 받느냐는 질문을 넣었는데 일부 참여자들은 생활비까지 포함해 대답하기도 했다”며 “이런 항목들은 유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재조사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가 논문에 매달린 이유는 노인의 성생활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고 싶어서다. 터부시하거나 추잡한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노인의 성생활은 삶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며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 이해하고 이를 위한 정책적 대안이 마련돼야 성폭행 같은 사회병리적 현상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도, 쉬는 시간에도 눈은 언제나 책을 향하고 있다. 지인들의 전언으로는 폐지를 모으는 곳도 자주 간다고 한다. 버려진 책들 중 자신이 필요한 것이 있는지 찾기 위해서다. ‘책벌레’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김 교수는 자신처럼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는 만학도들을 위한 강의를 하고 있다. 평균 나이는 65세. 제자라며 찾아온 이들 중에는 동갑도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더 배우고 싶다며 찾아온 학생들도 있다. 이들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도전하고 실행하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되든, 안 되든 우물쭈물하거나 미루지 말고 생각났을 때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게 필요합니다.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하다 보면 아픈 것도 사라집니다. 남들처럼 사회봉사도 할 수 있게 되죠. 실천하지 않으면 모든 게 무용지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