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폐배터리의 글로벌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통과 영향까지 미칠 전망이다. 글로벌 원자재값 급등 속에 친환경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보니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9일 시장조사 기관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사용 후 발생하는 폐배터리는 올해 16만 대에서 2025년 54만 대, 2030년 414만 대, 2040년 4636만 대로 30배 가까이 급증할 전망이다.
폐배터리는 배터리에 필수적인 주요 금속을 그대로 담고 있어 중요한 원재료 확보 창구로 활용된다. 폐배터리를 파·분쇄하면 니켈·코발트·리튬 등 주요 금속을 추출할 수 있다. 최근 지정학적 위기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심각해지고 이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는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친환경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통과한 IRA도 중요한 변수다. IRA는 배터리의 핵심 광물의 경우 북미 지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해야만 보조금을 주도록 했다. 광물 시장을 장악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인데,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주목받는 모습이다. 키움증권 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배터리 핵심 소재 중 중국산 수입 비중은 수산화리튬 84%, 코발트 91%, 천연 흑연 90%에 달한다.
폐배터리의 수요는 갈수록 치솟고 있지만 시장에서 확보할 수 있는 폐배터리 양은 제한적이다 보니 기업들의 ‘확보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SK온·삼성SDI(006400) 등 배터리 3사 뿐 아니라 최근에는 에너지·화학·건설 업체까지 폐배터리 시장에 뛰어든 상태다. SK에코플랜트는 미국 어센드엘리먼츠와 5000만 달러의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했고 GS건설(006360)도 자회사 에네르마를 통해 리튬이온 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진출했다. 전기차 배터리와 직접적인 사업 연관성이 없는 기업들도 폐배터리의 성장 가능성과 친환경성을 높이 평가하고 관련 산업에 선제적으로 진출하는 모습이다.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이 전 세계 곳곳에서 세워지고 있지만 폐배터리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블룸버그통신은 “현재 주행 중인 전기차는 대부분 수명이 수년 더 남았고 배터리 업체들 또한 공장 폐기물을 절감하는 추세여서 재활용 업체에 공급되는 자재는 더 적다”며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중고 배터리양은 2030년대 중후반 들어서야 급증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 자체가 아직 초기 단계이고 전기차를 한 번 구입해 6~7년을 탄다고 가정하면 2026~2027년은 돼야 의미 있는 정도의 폐배터리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며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폐배터리 사업뿐만 아니라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광물 업체와 협력을 늘리는 식으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