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가 마침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에까지 깃발을 꽂았다. 한국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지난해 9월 공개된 이래 엄청난 기록과 수상 행진을 이어간 끝에 에미상에서 감독상·남우주연상 등 6관왕에 올랐다. 작품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비영어권 작품과 배우로서 에미상 사상 첫 주요 부문 수상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영화 ‘기생충’이 비영어권 작품 최초로 2020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등 4개의 상을 받은 데 이어 또 한번 ‘1인치(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었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는 12일(현지 시간) 미국 TV예술과학아카데미 주최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마이크로소프트시어터에서 열린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황 감독은 벤 스틸러(세브란스: 단절), 마크 미로드(석세션), 제이슨 베이트먼(오자크)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수상자로 선정됐다. 주인공 성기훈을 연기한 이정재도 제레미 스트롱(석세션), 제이슨 베이트먼(오자크), 밥 오든커크(베터 콜 사울) 등을 제쳤다.
먼저 상을 받은 황 감독은 영어로 “저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역사를 만들었다”며 “비영어 시리즈의 수상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상이 제 마지막 에미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시즌2로 돌아오겠다”고 덧붙였다. 이정재 역시 영어로 “TV아카데미, 넷플릭스, 황 감독께 감사하다”며 “황 감독은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탄탄한 극본과 멋진 연출로 스크린에 창의적으로 옮겼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한국어로 “대한민국에서 보고 계시는 국민 여러분과 친구, 가족, 소중한 팬들과 기쁨을 나누겠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은 앞서 열렸던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 시상식에서 게스트상·프로덕션디자인상·스턴트퍼포먼스상·시각효과상을 받은 바 있어 총 6개의 상을 받았다.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이 갖는 의미는 비영어권 작품으로 세계 최대의 콘텐츠 시장인 미국의 주류 방송계를 대표하는 시상식을 뚫어냈다는 점에 있다. LA타임스는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 시상식의 역사적인 밤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에미상은 애초 미국 프로그램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국의 시상식이라 ‘오징어 게임’의 수상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고섬 어워즈에서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올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오영수가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는 이정재와 정호연이 남녀 주연상을 받는 등 기대를 모았다. 특히 이정재가 받은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은 역대 한 번도 아시아계 배우가 수상한 적이 없었던 상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크다. 미 연예 전문 매체 버라이어티는 “이정재가 에미상의 역사를 새로 썼다”며 “비영어 배역으로 에미상의 연기상을 받은 건 이정재가 처음이며 에미상에서 아시아계 배우가 상을 받았던 건 역대 네 차례뿐”이라고 전했다.
‘오징어 게임’은 총 456억 원의 상금을 두고 총 456명의 사람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다뤘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작품에 대해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과 윤리 의식이 무너진 현실을 다룬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넷플릭스의 공식 집계를 보면 이 작품은 지난해 9월 17일 공개된 후 28일간 누적 시청 시간이 16억 5045만 시간으로 역대 다른 히트작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의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94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작품에 올랐다.
극중 등장한 ‘달고나’ 세트, 참가자들이 입은 녹색 체육복, 동그라미·세모·네모 모양 가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속 인형 등이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LA시는 ‘오징어 게임’이 미국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력과 성과를 기념해 이 작품의 공개일인 9월 17일을 ‘오징어 게임의 날(Squid Game Day)’로 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