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 오픈엣지테크놀로지가 코스닥 상장을 위해 실시한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참패하며 공모가를 희망가 하단보다 33% 낮은 수준에 책정했다. 오픈엣지의 수요예측 부진은 최근 금리 급등 속에 성장주들이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힘을 못 쓰는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오픈엣지는 지난 7~8일 기관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공모가를 1만 원으로 결정했다. 이는 기존에 희망했던 공모가(1만 5000~1만 8000원)보다 33.3~44.4% 낮은 수준이다.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도 3126억~3751억 원에서 2087억 원으로 대폭 줄었다.
오픈엣지는 수요예측에서 44.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총 322개 기관이 응찰했는데, 이 중 희망가 하단(1만 5000원)에 못 미치는 가격을 써낸 곳이 262곳으로 전체의 81.3%에 달했다. 오픈엣지는 확정 공모가 1만 원을 바탕으로 오는 15~16일 일반 청약을 실시할 예정이다.
오픈엣지는 토종 반도체 IP 설계 회사로 주목을 받았다. IP는 반도체 칩 설계에 ‘뼈대’ 역할을 하는 도구다. 대부분의 반도체 IP 설계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30~40%에 달할 정도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꼽힌다. 삼성전자(005930)의 유력 M&A 후보 기업으로 거론되는 영국의 암(ARM)이 대표적인 반도체 IP 설계 업체다.
오픈엣지는 신경망처리장치(NPU) 분야에서 독보적인 IP 설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상장에 앞서 받은 기술성 평가에선 반도체 업체 최초로 AA 등급을 받기도 했다.
오픈엣지가 상당한 경쟁력을 갖췄지만 기관 투자가들의 외면을 받은 이유는 실적 대비 희망 공모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인식 때문이다. 오픈엣지는 올해 상반기 매출로 70억 원을, 당기순손실로 63억 원을 올렸지만 공모가 기준 시총은 3000억 원대에 달했다. 2024·2025년에 각각 141억 원, 265억 원의 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한 것이 높은 몸값의 근거가 됐다. 여기에 주관사인 삼성증권(016360)은 38.5배의 주가순이익비율(PER)을 매긴 후 21~34%의 할인율을 적용해 희망 공모가를 정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비록 오픈엣지의 기술력이 좋다고 하지만, 현재의 매출 수준 대비 3000억 원 수준의 기업 가치는 너무 과하다는 분석이 있다”며 “최근처럼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선 오픈엣지같은 종목에 호불호가 갈렸을 법하다”고 해석했다.
오픈엣지의 수요예측 부진은 ‘적자 성장주’가 공모에 잇달아 실패한 것과 관련이 적지 않다. 앞서 지난 달 카셰어링 1위 업체 쏘카(403550)가 수요예측 부진으로 공모가를 희망가 하단보다 18% 낮은 2만 8000원에 결정하는 등 IPO 시장에선 성장주를 기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쏘카의 14일 종가는 2만800원으로 공모가 대비 30% 가까이 추락했다.
최근 글로벌 금리 상승세는 성장주의 가치 평가에 특히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는 20~21일(현지 시간)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를 1%포인트 올리는 ‘울트라 스텝’을 추진할 가능성까지 거론돼 성장주는 비용 부담에 경기 침체 우려까지 떠안은 형국이다.
컬리나 케이뱅크처럼 실적 성장성이 부각되는 대어(大魚)들의 향후 IPO가 험난한 여정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도 연장선에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금리 부담이 큰 성장 기업들이 성급하게 IPO를 추진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