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잃어버린 30년, 일본의 교훈

한훈 통계청장

한훈 통계청장

1985년은 일본 경제에 큰 전환점이 된 플라자합의가 있었던 해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당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쌍둥이 적자로 견딜 수 없게 된 미국의 주도로 9월 22일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의 G5 국가 재무장관들이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 미 달러화 가치 하락을 유도하기로 공동 합의한 것이다.


플라자합의 당시 미국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240엔 수준이었는데 불과 1년 만에 150엔대로 조정됐다. 환율 조정으로 경제가 타격을 받게 되자 일본은 엔고 불황을 우려해 5%였던 기준금리를 1987년까지 점차 2.5%까지 낮췄다. 금리 인하와 시중의 유동성 증가로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몰려들었고 1980년대 후반 극심한 버블을 만들었다.


1991년 부동산 버블의 정점 당시 도쿄의 평균 주택 가격은 1983년에 비해 2.5배, 상업지의 경우는 3.4배 수준까지 상승했다. ‘도쿄를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주식시장의 경우 닛케이지수가 1983년 1만 엔 수준에서 1989년 말 거의 3만 9000엔 수준까지 올랐다. 1989년 당시 도쿄증권거래소의 상장사 시가총액이 세계 1위를 기록했고, 전 세계 시가총액 순위 1위에서 5위까지 기업이 모두 일본 기업이고 20위 내 기업 중 14개가 일본 기업일 정도였다.


일본 경제의 버블은 1989년 기준금리 인상, 1990년 부동산 총량 규제 도입 등으로 꺼지기 시작했고 대략 10년 만에 부동산과 주식시장은 1983년 수준까지 다시 떨어졌다. 버블 붕괴는 일본 경제에 큰 상처를 남겼다. 버블 붕괴 이후 부실 채무가 누적되고 이로 인한 기업과 은행의 부채 및 대출 조정이 지속되면서 장기 불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1991년 일본 경제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경제의 15%를 차지했는데 30년 후인 2021년에는 5%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국 경제와 비교하면 1991년 한국 경제의 11배 수준에서 지금은 2.7배 수준이다. 1인당 GDP의 경우에 한국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며 구매력평가지수 기준으로는 이미 2018년에 한국에 역전당하게 됐다.


필자는 ‘아베노믹스’가 한참 진행되던 시절 주일본대사관에서 재경관으로 근무하며 일본 경제 침체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일본의 많은 관료·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버블의 발생과 붕괴 이후의 대처 과정에서 정책 실패와 인구구조에 관해 이야기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일본 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과도한 버블이 생기는 것을 막지 못했고 버블 붕괴 이후에도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고 기존 시스템에 안주했다는 것이다. 또 1990년대 중반 이후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일본 경제의 역동성이 상실됐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구구조를 보면서 우리 경제가 일본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인구구조는 분명 우려되는 부분이고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 하지만 인구 구조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버블이 생기지 않도록 경제를 운영하고, 기존 시스템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가는 노력을 하면 ‘일본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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