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이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 중소기업에 내준 대출액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급증했지만 부실률은 오히려 크게 줄었다. 이는 코로나19 대출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조처가 낳은 통계적 착시 현상으로 풀이된다. 금융 당국은 이달 말 코로나19 금융 지원을 종료할 예정이지만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우리 경제에 주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를 재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정상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제는 한계기업의 부실을 더 이상 숨기지 말고 드러내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팽팽하게 맞서는 모습이다.
18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산업은행의 한계기업 대출액 및 부실액 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산업은행과 거래 중인 한계기업은 670곳으로 산업은행이 이들에 내준 대출액은 15조 186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신용등급 CC 이하 기업의 부실액은 3824억 원으로 부실률(부실액/대출액)은 2.5%로 조사됐다.
한계기업의 대출 잔액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 연속 증가했다. 올 들어 전체 한계기업 대출 잔액 증가세는 멈췄다. 하지만 한계 중소기업 대상 대출은 올 상반기 말 기준 5조 6298억 원으로 6개월 사이 무려 1조 7496억 원(45.09%)이나 폭증했다.
대출은 늘고 있지만 부실률은 감소하는 추세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10.1%)만 해도 10%를 웃돌았지만 2020년 8.2%, 지난해에는 5.7%로 줄더니 올해 상반기에는 2%대까지 내려갔다. 대기업(2019년 17.4%→2022년 6월 1.1%) 중견기업(10.3%→5.6%), 중소기업(6.2%→0.9%) 등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모두 하락세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난 부실은 519억 원에 불과해 대출액의 1%에도 미치지 않았다.
문제는 부실률 감소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처가 지속돼 실제 기업의 부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금융 지원이 종료될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지 기업 부실률은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에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재연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정상화 과정에서 지금껏 연명치료에 의존했던 한계기업 중 옥석을 가려내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단기적인 충격을 걱정한 나머지 공적자금 등을 쏟아부어 정부 지원만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좀비기업들이 속출한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부문의 역동성 제고가 시급한 가운데 재무 구조가 부실하고 영업 능력의 근본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한계기업들이 만성적으로 시장에 잔존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며 “한계기업의 가파른 증가 추세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직접적으로 저해하는 한편 산업 내 희소한 자원이 한계기업으로 과다 배분됨에 따라 정상적인 기업의 고용과 투자를 저해하는 경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의 역할 변화도 요구되고 있다. 이기영 경기대 교수와 심명화 명지대 부교수는 “신산업 정책을 위한 정책금융의 확대는 불필요한 정책금융의 기능 축소·폐지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정책금융 체계 효율성 개선을 위한 개편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 및 경제 시스템의 기능을 강화시키고 정부의 잠재적인 재정 건전성 악화를 방지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