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단기외채가 증가하는 등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자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금통위 회의 때는 조선업체의 선물환 매도에 대한 질의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이나 서학개미 등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를 눈여겨보던 금통위가 조선업체의 선박 수주가 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이로 인한 외환 부문의 파급 영향을 걱정한 것이다. 금통위가 조선사 수주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할 만큼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다.
한국은행이 공개한 8월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내년 중 선박 수출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2007년 환율(원화 가치) 급등 주요 배경이 됐던 조선사 선물환 매도가 다시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라고 담당 부서에 질의했다.
이에 담당 부서는 “조선사 선물환 매도는 대체로 선박 수주 시점에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선박 인도 시점에 반영되는 수출통계(통관 기준)와는 시차가 있다”라며 “내년 선박 수출과 관련된 부분은 선물환 계약이 어느 정도 선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답변했다.
조선사를 포함한 수출업체는 수출 대금을 계약 즉시 받는 것이 아니라 3개월이나 1년 등 일정 시점 이후 받게 되는데 그때까지 발생할 수 있는 환율 변동 위험을 없애기 위해 선물환 매도 등을 통해 환 헤지를 미리 한다. 선박 수주 계약 때부터 환 헤지를 해둔 상태이기 때문에 건조를 마치고 내년에 수출이 이뤄지더라도 선물환 매도가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한 셈이다.
대신 한은은 내년 새롭게 수주하면 선물환 매도가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 담당 부서는 “다만 내년에 글로벌 선박 수주가 증가할 것이라는 업계 전망을 감안할 때 국내 조선사의 선물환 매도세를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선업체가 선박을 수주하면 환 헤지를 위해 선물환 매도 규모를 늘리는데 이때 선물환을 매수한 은행들이 선물환 포지션 한도 규제나 자체적인 환 헤지를 위해 현물환을 매도하면서 환율이 하락하게 된다. 은행은 포지션 조절 과정에서 필요한 외화를 차입하기 때문에 단기차입도 함께 늘어나는 등 연쇄적 영향이 나타난다.
한은이 2010년 작성한 ‘조선업체 환헤지가 외환부문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살펴보면 국내 조선업체들은 2003~2008년 조선 호황기 당시 선박 수주가 급증하자 환율 하락 위험에 대비해 환 헤지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4년 이후 조선업체의 선물환 매도 증가로 외채가 크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스왑시장 불균형이 발생해 스와프레이트가 하락하는 영향이 나타났다. 또한 외환시장에 공급 초과 현상을 지속시키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이는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
최근 상황을 살펴보면 국내 조선업체들은 금통위원 발언대로 선박 수주 소식을 잇달아 전하며 부활 신호탄을 쏜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체는 올해 상반기 전 세계 발주량 2153만CGT(표준선 환산톤수) 가운데 45.5%인 979만CGT를 수주했다. 2018년 이후 처음으로 수주 실적 1위를 기록했다. 특히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싹쓸이하며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그렇지만 최근 조선사 선물환 매도 추세를 본다면 금통위원의 걱정은 기우가 될 수도 있다. 달러로 대금을 받는 수출업체 입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떨어진다고(원화 가치 상승) 보면 환 헤지가 시급하지만 반대로 원·달러 환율이 오른다고(원화 가치 하락) 한다면 환 헤지를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글로벌 강달러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만큼 조선사들은 선물환 매도 시점을 조절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지금과 달리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던 2007년 땐 조선사들은 수주가 확실하면 계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선물환 매도를 해버렸지만 최근엔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내년에도 조선업 수주가 증가한다면 선물환 매도는 오히려 원·달러 환율 하락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은행의 달러 차입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단기외채 비율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올해 2분기 준비자산(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은 41.9%로 2012년 2분기(45.5%)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다. 환율 급등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이 소진돼 단기외채 비율 상승 속도도 빨라질 경우 자칫 대외지급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특히 금통위는 단기외채 비율 증가 등을 위기 전조 현상으로 보고 있다. 단기외채 증가가 자본이 급격히 유출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정책금리 인상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커지고 기간마저 길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또 다른 금통위원은 “최근 조선사 선물환 매도 증가, 거주자 해외투자 확대, 단기외채 증가 등으로 외환 부문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