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 하락 이미 위험 수위…순식간에 ‘IMF 위기’ 수준 맞을 수도” [청론직설]

◆성태윤 한국국제금융학회장(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한미 통화스와프, 지레 포기 말고 강하게 추진해야
통화당국 ‘금리 0.25%p씩 인상’ 메시지는 큰 패착
尹대통령 낮은 지지율, 경제위기·정책성과 부진 탓
생산 성과에 고용·임금 연동되도록 노동 개혁 필요

한국국제금융학회장인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1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원화 가치 하락은 이미 위험 수위"라며 "정부와 통화 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1997년의 외환 위기에 버금가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바짝 다가서면서 외환시장에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국제금융학회장인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1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원화 가치 하락은 이미 위험 수준”이라며 “정부와 통화 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1997년의 외환 위기에 버금가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관심이 높아진 한미 통화 스와프에 대해서는 이솝의 ‘여우와 신 포도’ 우화를 예로 들며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질타했다. 성 교수는 “정부는 ‘미국이 한미 통화 스와프를 안 해줄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자포자기하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면서 “한미 동맹의 상호 이익을 강조하면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 ‘앞으로 0.25%포인트씩만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식의 통화 당국 메시지가 환율 급등을 자초한 큰 패착이었다”라며 아쉬워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전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뚜렷하다. 실업률과 물가 상승이 같이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복합적 위기라고 본다. 우리나라도 국내 위기와 해외 요소가 같이 있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경제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할 수 있겠다.


-국내 복합 위기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한국의 복합 위기는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금융과 실물, 둘째는 물가와 경기, 셋째는 해외 요인과 국내 요인이다. 위기의 정도는 1997년이나 2008년의 상황보다 아직 조금 덜하지만 순식간에 그 정도 수준까지 진행될 수도 있다. 통화가치 하락 폭이 1997년 외환위기 때의 4분의 1이고 2008년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의 2분의 1 수준이다. 당시 하락 폭은 최악 상황 기준이기에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원화 가치 하락은 이미 위험 수준으로 볼 수 있다.


-현 위기 상황에 특이점이 있다면.


△특히 어려운 점은 우리나라의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이 증대되면서 외화를 확보해 위기 국면을 완화해줘야 되는데 현재 그 메커니즘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요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해외 경기 상황이 좋지 않다. 둘째는 우리가 특정 품목을 제외하고는 국제 경쟁력이 좀 많이 약화돼 있었는데 그 특정 품목에 해당하는 부분의 경기가 최근 가라앉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이 순간 가장 시급히 취해야 할 정책 조치는 뭔가.


△인플레이션 관리와 외환시장의 안정적 유지가 제일 중요하고 다급하다. 지금처럼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올라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한국 경제는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금리 인상과 원화 가치 급락을 유발해 외국에서 돈을 빌려 사업하는 기업들과 빚을 내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길 수도 있다. 외환 위기 당시 정부의 시의적절한 조치가 결여된 탓에 누가 어떤 타격을 받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원화 가치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다.


△외환시장이 이렇게 어렵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통화 당국의 부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다. 글로벌 경제가 격동하는 상황인데 앞으로 0.25%포인트씩밖에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엄청난 패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외국투자가들이 한국의 경제 환경은 향후 그만큼밖에 금리를 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식이 심어지면 우리나라의 통화가치는 더 급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금리 정책이 요구되는가.


△금리는 상황에 따라 0.25%포인트씩 올릴 수도 있고 0.50%포인트 인상의 빅스텝이나 0.75%포인트 인상의 자이언트스텝, 1.0%포인트 인상의 울트라스텝을 밟을 수도 있다. 문제는 0.25%포인트씩 외에 모든 가능성을 닫은 것처럼 이야기해 금리 정책의 대응 능력을 스스로 반감시켜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을 제대로 보지 않고 우리가 0.25%포인트씩 안정적으로 가겠다고 밝히는 것은 해외 상황에 따라 매우 위험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도 있다.


-한미 통화 스와프에 대한 관점은.


△현재 통화 당국과 행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문제가 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에 통화 스와프를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솝우화에서 여우가 너무 높이 달린 포도를 따먹기 어려우니까 ‘저 포도는 실 거야’라며 돌아서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한미 통화 스와프는 절대로 불가능한 이슈가 아니다.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의 상호 이익을 강조하면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에 점수를 얼마나 줄 수 있겠나.


△기본적인 정책 방향성에 대해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일단 ‘B학점’은 줄 수 있겠다. 그러나 정책이 실제 현실화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고 그래서 현재 국내 경제가 어려운 국면에 처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물가 급등을 대외 여건과 지난 정부의 탓으로 일부 돌릴 수 있겠지만 내년이 되면 경제적 난관의 모든 책임을 현 정부가 떠안아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잘 짜인 경제정책이 왜 현실화하지 못하는 걸까.


△경제정책을 기존 관료 중심으로 실행하다 보니 기존의 것들을 그냥 유지하려는 관료 특유의 성향이 작동하는 듯하다. 말로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그 문제가 변경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경직된 관료주의 시스템 탓이 크다. 실제로 지금 부동산 관련 세금, 노동시장 문제 등에서 바뀐 게 거의 없다. 좀 더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지닌 경제 전문가들과 정책 방향을 논의하고 실행할 것을 권하고 싶다.


-윤 대통령의 낮은 국정 수행 지지율이 경제정책과 관련돼 있다고 보는가.


△매우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낮은 핵심적 이유는 물가 상승, 외환시장 불안 등 각종 경제지표와 경제 상황에 대한 관리가 충분하지 못한 탓이 크다. 미국에서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기가 상당히 낮은 것은 인플레이션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부도 경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이 정면 충돌하는 와중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일반적인 무역에서는 확고하게 중국과의 자유무역을 지향해야 하지만 하이테크놀로지와 관련된 분야에서는 미국 네트워크에 들어가 한미 협조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국익과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의 보조금 혜택에서 한국 전기차가 배제된 것은 아쉽다.


△이 역시 우리가 ‘신 포도 우화’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자국 이익 우선 정책을 펴고 있으므로 한국 기업들을 미국 기업들과 같은 호혜 관계로 대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은 실현하기 어렵고 어차피 되지도 않는 일이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도움이 절실한 부분은 절박감을 갖고 요청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왜 미국에도 도움이 되는지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국익을 제대로 지킬 수 있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병폐를 꼽는다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그러지 않아도 경직적이었는데 지난 정부 때 경직성이 더욱 강화돼 성과 평가에 따라 고용주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가 매우 어렵게 됐다. 그러다 보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채용이 감소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 임금과 고용 체계 개혁이 필요하다. 국회 입법을 통해 생산 성과에 임금·고용이 탄력적으로 연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바로잡아야 할 병폐는 뭔가.


△세금 부담이 경제 흐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로 소득 흐름이 원만하지 않은데 지난 정부의 정책 실패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세금까지 과도하게 증가하면서 소비 여력이 크게 저하됐다. 새 정부가 전반적인 세금 부담을 어느 정도 해소해줘야 하는데 이 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지 않았다.


-경제 복합 위기로 기업들의 부담이 매우 큰데.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고통이 커지는 가운데 기업들은 노동 비용 상승 부담까지 안고 있다. 근로자들은 임금 상승을 체감하지 못하지만 기업들의 중압감이 커진 것은 주52시간 근로제 시행 등으로 단위 임금이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가 법인세 인하를 비롯해 기업들의 여타 비용을 줄여줄 수 있는 방안을 깊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경제 복합 위기 속에 정치의 역할이 아쉽다.


△1997년 외환 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정치는 갈등만 일으키고 제대로 정책 대응을 하지 못해 위기를 막아내지 못했다. 지금도 당시 상황과 비슷하다. 경제가 복합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데도 여야는 정치적 이해득실만 셈하며 갈등을 키우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시장 원리에 충실한 개혁을 통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여야 정치권이 힘을 모아야 한다.



◆He is…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구로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경제팀 연구위원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해왔다. 연세대에서 경제학부장·언더우드국제대학장 등을 지낸 뒤 현재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2015년에는 45세 이전에 가장 뛰어난 연구 실적을 보인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한국경제학회 청람상을 받았다. 한국경제학회 감사를 지냈으며 이달 초 한국국제금융학회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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