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닮는다? 중국식 '산업정책' 시작한 美[윤홍우의 워싱턴24시]





워싱턴 컨센서스가 베이징 컨센서스로 바뀌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원래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 모델을 말합니다. 1990년에 미국이 경제위기에 빠진 중남미 국가들에게 제시했던 정책 모델이죠.


정부의 예산을 줄이고 자본 시장을 자유화하고 관세를 인하하는 것. 즉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반대가 있죠. 바로 국가주도의 경제성장. 베이징 컨센서스입니다. 미국과 중국 경제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했는데요. 요새는 워싱턴이 마치 베이징을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 다시 돌아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에 정말 자주하는 말입니다. 이번달만 해도 지난 9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인텔 공장 기공식, 지난 15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북미국제오터쇼를 찾아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요.


취임 초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독단적인 외교 정책을 수습하면서 ‘미국이 돌아왔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면 지금은 미국의 제조업의 부활을 강조하며 미국의 귀환을 알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 의회에서 미국 제조업 지원을 위한 천문학적 예산을 담은 법안들이 통과되며 바이든 대통령의 자신감이 붙었는데요. 실제 그 규모가 막대하긴 합니다. 보조금과 ‘택스 크레딧(세액공제)' 로 미국 산업을 재편하겠다는 건데요. 이러다 보니 이게 대체 워싱턴이 하던 방식이 맞아? 이건 베이징이 하는 방식이 아냐?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한번 보면요






‘조 바이든의 산업 정책은 크고 대담하지만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최근에 이코노미스트가 이런 분석 기사를 내놨습니다.


대략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 학자들, 또 경제 관료들 사이에서는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이 비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1990년에 월드뱅크, 국제통화기금(IMF), 재무부, 국무부 등이 개입해서 완성한 워싱턴 컨센서스가 바로 이걸 대변합니다.



워싱턴은 일반적으로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는 영역에서만 산업 정책을 써왔습니다. 대표적인 게 국방 산업이고 실제 성공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미국 정부 주도의 국방산업 투자와 연구개발은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보잉과 같은 거대한 방위산업체들을 탄생시켰구요. 원자력이나 인터넷과 같은 영역들이 국방산업에서 파생되서 민간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지금도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유지하는 힘의 원천은 국방 산업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다른 영역들에서는 정부의 개입이 실패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한 태양광 패널 업체 솔린드라가 망한게 대표적입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 업체를 두고 ‘미국의 미래’ 라고까지 했는데요. 미국 정부 대출 보증 까지 받아 공장을 짓고도 중국의 저가 패널 공세 밀려서 결국은 완전히 파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전기차·친환경 등 민간이 주도해온 영역에서 천문학적 국가 예산을 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을 견제한다는 목표로 사실상 중국과 같은 국가주도 산업 정책을 시작했다는 건데요. 이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미국 의회를 통과한 바이든 대통령의 산업 정책을 뒷받침하는 법안들은 약 3~4개가 되는데요.


우선 지난해 11월에 통과된 ‘초당적 기반시설법(Bipartisan Infrastructure Law)’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탄소 포집과 같은 친환경 에너지 기술에 200억 달러, 미국 전역에 전기차 충전소를 짓는데 80억 달러를 투자합니다.






또 지난 7월 통과된 ‘반도체와 과학법(the CHIPS and Science Act) ’은 반도체 공장 건설에 520억 달러 보조금을 주고, 240억 달러의 세액 공제 혜택까지 제공합니다. 여기에 과학 분야 연구에도 1,7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할 예정입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굉장히 논란이 많은 법안이죠.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nfaltion Reduction Act)은 산업 정책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기차 보조금, 신재생 에너지 투자 등에 총 3,750억 달러를 쏟아 부을 예정입니다.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이 모든 걸 합치면 향후 5년 동안 미국의 산업정책 연간 지출이 1,00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무려 140조원 가량입니다. 미국 싱크탱크들은 이게 거의 지금 까지 두 배 정도 많은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봤을 때 산업정책 예산 비중이 높은 프랑스나 일본을 앞지를 수 있다 이런 분석도 나옵니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중국이 절대로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전기차· 반도체·친환경 등 미래의 산업에서 국가 예산을 쏟아부어서라도 미국이 주도권을 갖겠다는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에 미국 업체에 대한 인수합병(M&A) 심사를 강화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는데요. 이 역시 전 세계 곳곳에서 우수한 기업들을 노리는 중국 자본에 대한 경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을 견제하겠다고 국가 주도 산업 정책을 추진하는 워싱턴의 시도가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당장 미국 내에서는 막대한 연방 자금이 제대로 관리 될 수 있을 것이냐. 이게 자칫 그냥 ‘보조금 잔치’가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우려도 나옵니다. 미국 정부 내에서 이렇게 막대한 연방 자금을 집행하고 관리해온 부처는 국방부 밖에 없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 보면 이게 정말 ‘미국의 제조업을 강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 카토 연구소의 한 선임 연구원이 최근에 이런 분석을 했는데요 저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중국의 반도체 회사들이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았지만 글로벌 리더가 되는 데는 실패했다. 중국식 국가 주도 경제는 과대 평가돼선 안된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고급 인력의 자유로운 이민, 세금과 규제의 완화, 동맹국과의 새로운 무역 협정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일단 미국의 국가 주도 산업 정책이 그리 매끄러워 보이진 않습니다. 미국 내에서 전기차 판매를 늘리겠다면서 전기차 생산지는 북미산으로 제한하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라고 하면서 중국 사업 비중이 큰 반도체 회사들의 중국 투자를 제한합니다. 이런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국가는 시장보다 효율적이었던 적이 많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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