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지시 법안도 이미 발의… 국회 뒷짐에 겉도는 스토킹법

'반의사불벌죄 폐지' 뒷북 논란
한동훈 장관 지시 법안 등 포함
법사위 계류·접수중…처리 0건
"통과됐더라면 참사 막았을수도"
'신당역 살인' 전주환, 21일 송치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해범 31세 전주환. (제공=경찰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인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15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개정안 가운데는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법 개정을 지시한 ‘반의사불벌죄 폐지’ 내용도 포함돼 있어 민생 법안 처리에 대한 국회의 무관심이 무고한 시민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신당역 사건이 발생한 이달 14일 전까지 스토킹과 관련해 소관위원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15건으로 파악됐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 13건 △스토킹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1건 △정부 발의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1건 등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 6월 10일 발의돼 소관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라간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에는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를 위해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한다’는 내용이 이미 들어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배 의원 등 11인이 올해 2월 유사한 내용으로 제출한 개정 법률안 역시 심사에 올라가지도 못한 채 접수 단계에 놓여 있다. 한 장관이 19일 신당역 사건을 두고 “반의사불벌죄를 즉각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규정한 법안은 1년 넘게 소관위에서 잠자고 있던 셈. 이들 법안이 미리 발의됐더라면 ‘보복 살인’이라는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구멍 난 법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신변 안전조치도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은 데다 보호조치나 변호사 선임 등 법률 조력도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이후 국회에서 관련 개정안이 통과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피해자 지원 시설 설치나 미성년 스토킹 가중처벌, 온라인 개인정보 배포 혐의 추가 등의 내용이 포함된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은 모두 소관위에 계류돼 있거나 접수만 된 상태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해자 유족 측 법률대리인 민고은 변호사가 20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앞에서 유가족의 입장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지난 1년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나 특별검사 도입 등 정치 공세로 신경전만 벌이면서 정작 중요 민생 법안을 돌보지 못한 것이다. 국회가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 관련해 법원과 경찰청 등의 대응을 질타했지만 정작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와 합의하면 스토킹 범죄를 없던 것으로 해주는 현행 법안이 보복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9일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서 “현행 스토킹법에서는 피해자가 합의해주면 사건이 그냥 유야무야 증발하게 돼 있다”며 “가해자는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해주면 얼마든지 사건화가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피해자를 협박하고 못살게 구는, 결국에는 앙심을 품고 살해에 이르는 식으로 법률이 만들어져 있다”고 강조했다.


신당역 사건의 가해자 전주환(31)은 지난해 10월에는 불법 촬영과 협박 혐의로, 올해 1월에는 성범죄와 스토킹 혐의로 피해자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고소당했다. 이에 전 씨는 반의사불벌죄인 스토킹 혐의 등에 대한 고소를 취하해달라며 피해자를 더욱 집요하게 괴롭히며 스토킹 행각을 벌이다가 결국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보복 살인 혐의를 받는 전 씨를 21일 오전 검찰에 구속 송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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