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 패션기업 갭이 실적 악화에 따라 정리해고에 나섰다. 매출 성장세가 수년간 제자리 걸음을 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심화로 비용마저 치솟는 등 악재가 겹치자 결국 전사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20일(현지 시간) 보도에 따르면 갭은 샌프란시스코 본사를 비롯해 뉴욕 및 아시아 본부의 전 부서 직원을 대상으로 약 500여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시간제 계약직을 포함한 전체 근로자 9만 7000명 중 본부 직원은 8700여명으로, 본부의 약 6%를 해고하는 셈이다.
밥 마틴 갭 임시 최고경영자(CEO)는 내부 공문에서 "최근 회사의 지출이 매출보다 빠른 속도로 늘고 있고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정리해고의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2분기 갭은 4900만 달러(약 683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2억 58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한 전년 동기와 달리 급격하게 적자로 돌아섰다. 순손실 규모가 예상치(1700만 달러 적자)를 훨씬 뛰어넘자 7월 소니아 싱걸 최고경영자(CEO)가 실적 부진의 책임을 안고 사임하기도 했다.(★관련 기사:"출근복 사는데 홈웨어 집착" 위기의 갭, CEO 사임)
특히 갭의 매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브랜드인 ‘올드네이비’가 다양한 사이즈의 옷을 출시했다가 과잉재고를 남기며 이윤에 큰 타격을 입혔다. 팬데믹이 한풀 꺾인 후 출근복 위주로 바뀐 소비자들의 의류 선호도를 파악하지 못한 점도 실책으로 꼽힌다. 게다가 실적 반등을 노리고 진행한 세계적 래퍼 카녜이 웨스트와의 협업 브랜드 ‘이지(Yeezy) 갭’ 마저 지난주에 중도 계약 파기를 맞는 등 어려움이 이어졌다. 다만 갭은 이번 감원이 이지 갭과의 파트너십 종료와 관련이 없다고 못 박았다.
이밖에 월마트는 매장 직원을 제외한 전체 직원의 5% 이상을 감원할 예정이고, 배스앤드비욘드는 전체 직원의 20% 감축을 목표로 하는 등 최근 소매업계에서 매출 침체에 따른 정리해고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점점 더 많은 소매업체들이 과잉재고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면서 팬데믹 시기에 겪은 ‘공급망 대란’ 의 재발에 대비해 재고를 충분히 확보한 상황에서 물가 급등으로 소비자들의 의류·가정용품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갭은 정규장에서 9.21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22.37달러) 대비 약 60% 하락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