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을 참호로” 러 38개 도시 동시 시위…NYT “푸틴, 가장 위험한 상태”

■'동원령' 반발 확산
"푸틴을 참호로 보내라"
전쟁발발후 첫 전국 시위
러 국민 엑소더스 불붙여
"체제 내부붕괴 시작" 관측도
주가 급락 등 금융시장 출렁
푸틴은 "굴복 않을 것" 고수

21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경찰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인 한 여성을 끌고 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예비군 부분동원령이 러시아에서 전국적인 반전시위와 국민들의 ‘엑소더스’에 불을 붙이며 푸틴 체제의 내부 붕괴가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적 고립과 우크라이나에서의 패색을 타개하기 위해 동원령 카드를 꺼내든 푸틴 대통령이 국내에서도 거센 반발 여론에 부딪친 가운데 뉴욕타임스(NYT)는 푸틴이 핵무기 사용을 암시한 점을 언급하며 “궁지에 몰린 푸틴이 어느 때보다 위험한 상태”라고 경고했다.


2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인권단체 OVD인포는 러시아 38개 도시에서 동원령 반대 시위가 벌어져 이날 저녁까지 최소 1311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 중 502명이 수도 모스크바, 524명이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나왔다. 모스크바에서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우리 아이들을 살려달라” “푸틴을 참호로 보내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경찰에 연행되던 한 시위자는 “나는 푸틴을 위해 죽고 싶지 않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약 10년 전 푸틴 재선 반대 시위 때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이번 전쟁 이후 처음으로 전국 단위로 일어난 반전시위"라며 “푸틴이 두려워했던 정치적 반발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온라인에서도 반전단체를 중심으로 시위 참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됐다. 반전단체 ‘베스나’는 “동원령은 우리 아버지·형제·남편인 수많은 러시아인을 전쟁의 고기 분쇄기에 끌려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며 "이제 전쟁은 모든 가정과 가족에게 닥쳤다”고 지적했다. 동원령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에는 순식간에 29만 2000명이 몰렸다. 이에 모스크바 검찰청은 인터넷에서 불법 가두시위 합류를 촉구하거나 직접 참여할 경우 최고 1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징집을 피하려는 러시아인들의 해외 탈출 러시도 이어지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무비자로 갈 수 있는 튀르키예 이스탄불, 아르메니아 예레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아제르바이잔 바쿠 등의 직항편은 모두 매진됐다.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정보기술(IT) 업계의 한 직원은 "러시아를 떠날 수 있는 유일한 비행기 티켓 가격이 이미 1만 6000달러(약 2260만 원)를 넘었다. 나는 이 가격을 감당할 수 없다”고 절망하기도 했다. 구글, 러시아 검색 사이트 얀덱스에서는 ‘팔 부러뜨리는 방법’ ‘징병을 피하는 방법’ 등의 검색이 크게 늘었다.


위기감은 금융시장에도 반영됐다. 이날 러시아 증시의 MOEX지수는 장중 한때 2002.73까지 떨어져 전쟁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가 낙폭을 만회해 전날보다 3.8% 하락한 2130.7로 마감했다. 루블화 환율은 한때 달러당 62.7975루블로 7월 7일 이후 최고치(루블화 가치 최저)를 나타냈다.


군 동원령이 푸틴 대통령의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곤란해진 그가 돌발 행동에 나설 위험이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NYT는 21일 푸틴이 핵무기 사용을 배제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궁지에 몰린 푸틴이 지금 가장 위험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러시아 대통령과 총리를 역임한 푸틴의 최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2일 “(러시아) 영토 방어를 위해 전술 핵무기 사용도 가능하다”며 위협을 이어갔다. 그러나 러시아가 실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낮으며 서방에 겁을 주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제사회의 비난과 국내의 반발에도 푸틴 대통령은 계속 강경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22일 러시아 건국 1160주년 기념 콘서트에 참석한 그는 “공갈과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는 1160년의 역사를 통해 잠시라도 주권을 약화시키고 국익을 포기하는 것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배웠다”며 “그런 시기에 러시아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았다. 더는 우리에게 그런 실수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격화하는 와중에도 양측은 260여 명의 포로를 교환했다.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15명의 우크라이나인과 외국인이 포로 교환으로 풀려났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50명의 포로를 러시아로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