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박서보 백’을 출시한다. 세계 미술 시장에서 높아진 국내 작가들의 위상이 반영된 것으로 향후 잇단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기대된다.
23일 미술계에 따르면 루이비통이 한국의 원로 화가 박서보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200개 에디션 한정판 핸드백을 제작해 올 하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무라카미 다카시, 구사마 야요이, 리처드 프린스 등의 거장과 협업했던 루이비통이 한국 예술과 손잡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서보는 한국의 1970년대 단색조 추상화를 칭하는 ‘단색화’의 대표 거장으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는 ‘글로벌 아티스트’다. ‘루이비통 컬래버 백’은 박서보의 2000년대 이후 ‘후기 묘법’ 연작 중 붉은색 작품으로 제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지를 몇 시간씩 물에 불린 후 뭉툭한 도구로 종이 결을 따라 수백 번 이상 곧게 긋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반복적인 ‘이랑’이 그대로 핸드백의 모티브가 됐다.
루이비통은 2019년부터 매년 6명의 유망 현대미술가들에게 200점 한정판의 ‘카퓌신 백’ 제작을 의뢰하는 ‘아티카퓌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여기에 함께한 도나 후앙카, 우르스 피셔 등 젊은 작가들은 브랜드 후광 효과와 함께 명성을 더 견고하게 다지는 결과를 얻었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루이비통이 브랜드 강화와 젊은 이미지로의 확장을 위해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을 전개했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무라카미의 흰색 모노그램, 멀티컬러 모노그램의 경우 브랜드의 성공뿐 아니라 작가 무라카미의 몸값도 높이는 계기가 됐다”면서 “태생적 하이엔드인 예술과 브랜드와의 협업은 대중과의 접점을 넓힌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에게 ‘윈윈’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이우환 작가의 경우도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등이 협업했던 ‘샤토 무통 로칠드’의 와인 라벨 작업 이후 세계적 명성을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럭셔리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은 우리 작가의 위상도 ‘동반 상승’한다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패션 산업과 순수예술은 다른 영역인 듯하나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접점을 갖는다. 또한 예술이 갖는 ‘영원불멸’의 속성은 명품 브랜드가 추구하는 지향점과도 일치한다. 그간 명품 브랜드의 아트 컬래버레이션은 서구 거장들만이 중심에 있었고 아시아에서는 럭셔리 시장이 강력한 일본 위주로 진행됐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력과 한국 미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제는 해외 브랜드가 한국 작가에게 먼저 러브콜을 보낼 정도가 됐다.
실제 명품 업체 생로랑은 이달 초 열린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기간에 작가 이배와 함께 단독 부스를 마련, 생로랑만을 위한 ‘붓질(Brush Stroke)’ 작업을 선보이며 공을 들였다. 같은 기간 샤넬은 정희승·박진아·박경근 등과 ‘아트토크’를 진행하며 예술적 교감과 미래적 비전을 얘기했다. 디올의 경우 신진 예술가와 ‘디올레이디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한국의 여성 작가 지지수가 참여한 바 있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박서보와 루이비통의 협력은 K팝과 K드라마·K시네마 등 다양한 한류 콘텐츠가 세계의 주목을 끄는 가운데 순수미술이 ‘K아트’로 활약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한류가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확산했는데 과학기술에 비유하자면 기초과학에 해당하는 미술·클래식 등의 순수예술이 한류를 더 풍부하게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