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어차피 범인 못잡아요”…인력난에 민원 반려하는 경찰

인력난 호소하는 경찰, 민원 사건 임의로 반려해
사건 1건당 처리기간 길어지며 지난해 64.2일 기록
수사 전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돼
경찰 "극심한 인력난 사실…다각도로 혜안 강구 중"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고 있는 김 모(36) 씨는 지난 3월 한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게시물에는 김 씨의 얼굴 사진과 함께 김 씨가 속한 조직을 비난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억울한 마음에 김 씨는 강동경찰서와 송파경찰서를 찾아 범인을 찾아 달라 요구했지만 두 곳 다 받아주지 않았다. “어차피 범인을 잡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서울 동작구 소재의 한 지역주택조합에 투자했던 지 모(41) 씨는 계약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자금 3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시행사의 대표는 돈이 없다며 말을 돌렸고 차일피일 시간만 지나갔다. 3년 5개월 동안 돈을 돌려 받지 못한 지 씨는 시행사의 대표를 사기혐의와 업무상 횡령죄로 고발하려 동작경찰서를 찾았다. 하지만 경찰은 해당 사건이 민사소송이니 변호사와 상담하라는 취지로 지 씨의 사건을 반려했다. 지 씨는 “얼마 뒤 같은 사건이 다른 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것을 확인해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경찰 민원실이 임의로 사건을 판단하면 어떻게 경찰을 믿을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24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검경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인력난으로 경찰이 일반 사건을 반려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소한 사건이나 범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의 경계가 애매한 경우 경찰이 임의로 사건을 반려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민원 반려 사례가 늘어나는 까닭은 경찰의 극심한 인력난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경찰은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늘어난 사건 수에 비해 인력충원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의 사건 1건당 처리기간은 2017년 43.9일 2018년 49.4일 2019년 50.8일 2020년 56.1일 2021년 64.2일로 계속해서 증가 추세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과나 형사과의 인력난은 특히 다른 부서에 비해 더욱 부족한 게 사실”이라면서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업무 부담은 늘어났지만 인력은 제자리걸음이거나 퇴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사건의 경중을 따져 사건 수사여부를 판단하게 될 경우 경찰이 민생과 멀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경찰이 민원인을 변호사에게 돌려보내면 개인은 변호사를 수임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게 돼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 이주호 법률사무소 커넥트 변호사는 “예컨대 재산범죄를 당했을 경우 일반인이 범죄의 유형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경찰이 무조건적으로 민사 문제로만 보고 민원을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경태 법무법인 디엘에스 변호사도 “다른 경찰서로 접수하면 진행될 사건이 어떤 경찰서에서는 ‘절대 기소의견으로 송치될 수 없다’며 고소장을 반려하는 경우가 있다”며 “수사 후 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 경찰관이 고소장을 한 번 보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경우 (경찰이) 당연히 엉뚱한 결론을 낼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피해자는 피해를 구제받기가 어려워지며 범죄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법원 판례는 특별한 이유 없이 경찰이 사건을 반려하는 경우 직무유기로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5월 형사사건이 아니라 민사사건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반려한 경찰에게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고소 등 민원 사건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경우 민원인의 서면 동의를 받아 반려하고 있으며, 제도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속 관리 중에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반려제도 개선을 위해 현재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여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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