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시장의 중심축이 시스템반도체로 편성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 기술 기반 4차 산업혁명 시대 개화로 시스템반도체가 더욱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 시도와 파운드리 육성 노력에도 우리나라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모리반도체 의존을 넘어 시스템반도체 기반 강화로 미래 반도체 먹거리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5일 시장조사 업체 IC인사이츠는 올해 3분기 TSMC의 반도체 매출이 지난 분기보다 11% 증가한 202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3분기 반도체 매출은 전 분기보다 19% 감소한 182억 9000만 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TSMC가 그간의 삼성전자·인텔 양강 구도를 깨고 세계 반도체 매출 1위 회사에 오르게 된다. 삼성전자와 TSMC 간 매출이 같은 기간임에도 극명하게 갈린 가장 큰 이유는 주력 사업의 종류와 특성이다.
삼성전자는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사업이 메인이다. 메모리반도체 업계의 영업 방식은 ‘생산 후 판매’다. 시장 상황이 악화하면 판매량이 줄고 재고가 급격히 늘어 매출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매출 가운데 메모리의 비율은 70% 이상을 차지한다. 사상 초유의 물가 상승, 코로나19로 하반기 정보기술(IT) 기기 시장이 얼어붙자 매출 경고음이 울린 셈이다.
반면 TSMC는 칩 위탁 생산(파운드리)이 주요 사업이다. 칩 설계 업체(팹리스)의 주문대로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세계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한 회사다.
파운드리 사업은 시장 변동에 영향을 덜 받는다. 시스템반도체는 세계 전체 반도체 매출 규모의 50~60%를 차지한다. 메모리보다 제품 종류가 다양해서 특정 산업의 호·불황에 치우치지 않고 수요가 꾸준하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는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 시장 규모가 2025년 각각 4773억 달러, 2205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연간 성장세는 메모리반도체가 약 5%포인트 앞서더라도 시장 규모는 시스템반도체 업계가 2배 이상일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시스템반도체 성장세와 달리 국내 업체 산업 경쟁력은 상당히 부진하다. 우리나라 시스템반도체 설계 시장 점유율은 1% 내외에 불과한 데다 성장마저 정체됐다.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는 2019년 ‘시스템반도체 2030 1위 비전’을 내걸고 파운드리 사업 육성에 사활을 걸었다. 다만 비전 선포 이후 이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회사는 지난 3년간 점유율 20%대를 돌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게다가 엔비디아·인텔 등 글로벌 칩 강자와 신규 반도체 고객사가 TSMC와의 협력을 늘리는 추세다. 2019년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극자외선(EUV) 공정, 올 7월 3나노 공정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양산한 삼성전자의 추격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모습이다. 엑시노스 시리즈를 필두로 한 고급 시스템반도체 설계 사업 역시 퀄컴·애플 등이 지닌 기술 리더십을 따라잡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 M&A로 시스템반도체 사업 확대를 노리는 모습이다. 특히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인 영국의 암(ARM) 인수 여부가 업계 최대 관심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다음 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서울에서 만나면 인수 제안을 하실 것 같다”며 ARM 인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밖에도 NXP·인피니언·온세미 등 세계적인 시스템반도체 업체를 물망에 올려놓고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회사의 반도체 분야 M&A에 대해 “어디라고 언급할 수는 없지만 M&A를 모색하고 있고, 우선순위를 정해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열악한 인력 구조, 국산화가 부진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역시 메모리 산업에 편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 차원의 인력 양성과 국내 수요·공급 기업 간 적극적 연계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국내 반도체 수요 기업 역시 해외 시스템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라며 “인력 양성과 동시에 국내 공급망 안정화가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