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행복한 과학자의 나라

김현상 경제부 차장

“여러분이 생각하는 과학자는 과연 행복할까요.”


이달 15일 서울경제 주최로 열린 ‘미래컨퍼런스 2022’의 강연이 끝나자 손을 든 한 청중이 질문을 던졌다.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과 연구실·병원 등을 거쳐 창업의 길을 걷고 있다는 그는 본인이 겪은 과학자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고 자문자답했다. 그러면서 과학자로 사는 동안 낮은 임금과 연구 성과에 대한 막막함 속에 자신을 시험해가며 버텨왔다고 고백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 다소 생경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들춰보면 그의 고백은 결코 엄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즘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대학의 기준이 ‘의대’와 ‘기타대’라고 할 정도로 수재들이 모두 의대로 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반면 이공계 기피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공계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은 2020년 98.7%에서 지난해 94.3%로 떨어졌고 이공계 대학원 진학률은 2017년부터 수년째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이 중에서 기초과학의 길을 택하는 학생들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어린 학생들부터 과학기술 전공을 외면하다 보니 관련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 핵심 기술로 손꼽히는 양자 분야의 국내 연구자는 720명으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조사한 20개국 중 18위에 그쳤다. 일본(2438명)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은 물론 이란(939명)과 폴란드(899명)에도 뒤처지는 수준이다.


국내에서 과학자들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동안 세계 각국은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함께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은 해외의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전공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이민정책까지 뜯어고쳤다. 중국과 유럽연합(EU)도 ‘천인·만인계획’과 ‘호라이즌 유럽 프로그램’을 앞세워 인재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전쟁의 상처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은 불타는 교육열이 만들어낸 인적 자원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기술 패권 시대에서 우리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것 역시 과학기술 인재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실업자 양산 공장’으로 전락하고 있는 대학 교육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교수 중심의 교육 구조를 학생 중심으로 바꾸고 산학연 협력 활성화를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의적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세계 과학기술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자축하는 사이 경쟁국들은 저만치 내달려가고 있다. ‘과학자는 행복한가.’ 청년 창업가가 던진 질문에 정책 당국과 정치권이 답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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