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최대 실적을 냈던 국내 정유사들이 경기 침체에 따른 석유제품 수요 감소로 하반기 실적 전망에 드리운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더욱이 정유사들은 최근 국제 유가까지 강달러 여파로 하락하면서 재고 평가 손실까지 우려되고 있다. 올 들어 수익성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는 석유화학 업계 역시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가격)’가 손익 분기점을 밑돌며 실적 반등이 요원한 상황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3분기 들어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의 정제 마진이 전 분기 대비 일제히 떨어지고 있다. 휘발유의 경우 3분기 두바이유 대비 스프레드는 9.1달러로 전 분기(30.1달러)보다 70% 가까이 하락했다. 경유 스프레드도 배럴당 52.3달러에서 41.3달러로 20% 넘게 감소했다. 등유 스프레드는 39.6달러에서 32.8달러로 17%, 중유는 -10달러에서 -27달러로 170% 감소했다. 나프타 스프레드는 -16.5달러에서 -23.7달러로 43% 넘게 줄어들었다.
정유사들의 정제 마진이 줄어드는 배경에는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석유제품의 수요 위축이 자리잡고 있다. 경기가 침체되면 정유사들의 공장 가동률은 떨어진다. 최근 중국이 석유제품 수출 쿼터를 150만 톤에서 1500만 톤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도 악재다. 공급량 확대로 정제 마진이 더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달러로 국제 유가가 하락하는 점도 정유사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보통 원유를 수입하고 이를 정제해 석유제품으로 판매하는 데까지 2~3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한창 가격이 비쌀 때 사놓은 원유의 가치가 떨어지면 재고 평가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상반기 발생한 이익의 약 30% 내외는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이라며 “강달러와 수요 위축으로 유가가 하락하면 반대로 재고 평가 손실이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환차손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정유사들의 수출 비중이 60% 내외이기는 하지만 원유 수입 규모가 석유제품 수출 규모보다 2배 이상 많기 때문에 환율 상승에 따른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에만 국내 정유 업계가 입은 환차손 규모는 1조 9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고유가로 인한 재고 평가 이익 증가와 정제 마진 강세로 초호황을 누렸던 정유 업계의 3분기 실적은 2분기 대비 대폭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분기 SK이노베이션의 흑자 규모는 2조 3292억 원이었는데 증권가가 내놓은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2분기의 반토막 수준인 1조 75억 원이다. 2분기 2조 1321억 원의 흑자를 낸 GS칼텍스의 3분기 예상 영업이익도 5000억~9000억 원 규모이고 2분기 1조 722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에쓰오일도 3분기 예상 영업이익이 8486억 원으로 파악된다. 현대오일뱅크도 3분기 들어 2분기 영업이익(1조 3703억 원)보다 적은 6000억 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3분기는 분명히 2분기보다는 실적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면서도 “다만 2분기 실적이 전례가 없는 호실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3분기 실적이 떨어지더라도 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상반기 호실적과는 달리 최근 글로벌 성장률 둔화에 따라 정제 마진이 하락하고 환율마저 1500원대를 눈앞에 두고 있어 앞으로의 경영 실적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석유화학 업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봉쇄 조치 등으로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며 공장 가동률을 낮췄는데 글로벌 경기 둔화가 예상되면서 가동을 더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원자재인 나프타의 가격이 오른 데 더해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석유화학사들의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도 손익분기점인 300달러를 하회하고 있다. 이달 23일 기준 에틸렌 스프레드는 228달러다. 8월에는 이 가격이 80달러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이 같은 흐름은 3분기 실적에도 반영될 예정이다. 증권가는 지난 2분기 214억 원의 적자를 낸 롯데케미칼의 3분기 영업손실을 224억 원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3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는 대한유화의 올 3분기 예상 적자 규모도 269억 원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