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기업 등 민간 부문의 부채 증가 속도에 2년째 경보가 울리고 있다.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도 조사 대상 43개국 중 세 번째로 부채 증가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등 주요국의 긴축 정책에 따라 금리가 가파르게 인상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취약차주에 대한 정교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9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한국 신용갭(Credit-to-GDP gap)은 15.9%로 집계됐다. 신용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합한 민간부채의 비율로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2% 미만이면 ‘보통’, 2~10%면 ‘주의’, 10%를 넘어가면 ‘경보’ 단계다. 올해 1분기 한국보다 신용갭이 높은 나라는 일본(24.5%), 태국(18.5%)뿐이다. 2020년 말만 해도 일본·태국을 포함해 캐나다·프랑스·홍콩·노르웨이·사우디아라비아·싱가포르의 신용갭이 우리나라보다 높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의 신용갭이 10%를 넘어 경보 단계에 처음 들어선 것은 2020년 2분기 이후 8분기째다. 통상 신용갭은 민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빠를수록 확대된다. 한국의 신용갭을 고려할 때 민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 경기 충격이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될 수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105.4%로 전년 말(105.8%)과 유사한 수준을 기록했고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15.2%로 전년 말(113.7%)보다 소폭 증가했다. 가계의 소득 대비 부채 보유량도 높은 수준이다. 1분기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13.1%로 조사 대상 17개국 중 네 번째로 높았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 같은 과도한 부채 비중이 한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연이은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 이후 다음 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방안이 유력한 만큼 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 등의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부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센터장은 “최근 다중채무자가 늘고 있는데 이는 한계에 도달한 차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신호”라며 “만기 연장 등 금융 지원 조치로 부실이 가려지겠으나 금리 인상으로 일부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