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한다더니 '100조 양적완화' 혼란 자초…"英, 이미 침체 진입"

■글로벌 위기 뇌관된 영국…모순된 정책에 비판 목소리 확산
금리인상 시사 하루만에 QE 발표
양적긴축 시작 시기도 연기 추진
통화-재정정책 엇박자 논란 커져
파운드 가치·국채금리 다시 불안
"미봉책 대신 감세안 재검토해야"

영국 런던에 있는 영국중앙은행(BOE) 본점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영국중앙은행(BOE)이 무제한 국채 매입 카드를 꺼내며 영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급한 불은 껐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미봉책이라는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급격한 금리 인상을 시사한 지 하루 만에 이번에는 돈을 찍어 국채를 매입해 시중에 돈을 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 정부가 감세 정책을 유턴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는 가운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영국이 이미 경기 침체에 진입했다는 비관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28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BOE의 국채 매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날 BOE는 30년물 국채금리가 5%에 육박하며 20년 만에 최고치를 찍자 다음 달 14일까지 국채 장기물을 무제한으로 사들이겠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이 같은 양적완화(QE) 규모가 하루 최대 50억 파운드씩 총 650억 파운드(약 101조 원) 규모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BOE는 또 보유 국채를 시장에 팔아 유동성을 흡수하는 양적긴축(QT) 시작 시기를 당초 예정했던 10월 3일에서 같은 달 말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물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또 QE를 단행하는 데 따른 논란을 의식한 듯 BOE는 “이번 조치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려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시장에서는 BOE의 이번 조치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대다수다. 휴 필 BOE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전날까지도 정부의 대규모 감세 정책에 대해 “상당한 통화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며 금리를 대폭 인상할 뜻을 시사했는데 BOE가 하루 만에 곧바로 정반대의 효과를 내는 QE를 단행하기로 해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QT를 다음 달 말로 연기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통화정책의 큰 방향성이 긴축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QE를 단행하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지적이다. FT는 “리즈 트러스 총리가 7월 선거 기간 중 금융위기 이후 단행한 QE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는데 두 달 만에 QE를 용인하며 말을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재정 정책과의 엇박자도 논란거리다. 재무부는 450억 파운드 규모의 감세로 수요를 촉진하려 하지만 BOE는 금리 인상 등을 통해 물가를 정책 목표인 2%로 낮추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 BNP파리바의 폴 홀링스워스는 “재정 정책은 자동차의 액셀 페달을, 통화정책은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도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파운드화는 28일 BOE의 조치 발표 이후 파운드당 1.0861달러로 전날보다 1.7% 상승(파운드 가치 상승)했지만 29일 장중에 다시 1.07달러대로 하락했다. 영국 10년물 국채금리도 27일 4.5%에 육박하다 28일 3.9%대로 뚝 떨어졌지만 29일에는 다시 4%대 초반으로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영국이 앞뒤가 안 맞는 미봉책을 쓸 것이 아니라 대대적인 감세안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BOE의 긴급 시장 개입에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BOE는 옳은 일을 했다”면서도 “그것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는 것과 재정을 확대하려는 것 사이의 모순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선임고문도 FT 기고에서 “정부는 감세를 연기하고 BOE는 11월 정례 회의 전에 긴급회의에서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트러스 총리가 29일 감세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탓에 당분간 영국 금융시장의 불안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는 경제 성장과 영국의 발전을 위해 (감세 같은) 긴급한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며 앞으로도 경제 성장을 위해 기꺼이 “어려운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또 그는 “우리가 세운 정책은 장기적으로 영국 경제를 더 나은 궤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S&P는 영국이 2분기에 이미 경기 침체에 진입했으며 침체가 1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28일 CNBC에 따르면 S&P는 “영국 가계가 9.9%에 달하는 물가 상승률에 직면해 있고 물가는 겨울에 더 올라 향후 민간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BOE가 물가 목표 2%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 2.25%인 기준금리를 내년 2월까지 3.25%로 올리며 경제를 급격히 냉각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S&P가 전망하는 영국의 올 경제성장률은 3.3%, 내년 성장률은 -0.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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