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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29일 국회 문턱을 넘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여야 원내대표에게 합의를 주문했지만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자 결국 해임건의안을 상정해 표결했다. 해임건의안은 총 170표 중 찬성 168표, 반대 1표, 기권 1표로 의결됐다.
여당은 표결에 앞서 국회 로텐더홀과 의장석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며 항의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정말 박 장관이 위법한 일을 했다면 탄핵 소추를 했을텐데 (민주당이) 자신 없으니 해임건의를 하는 것 아니냐”며 “169석의 절대 권력을 정부 발목 잡기에 악용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표결이 시작되자 여당 의원들은 집단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에 대해 국민의힘은 ‘정언유착’, 민주당은 ‘외교 참사’를 각각 내세우며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박 장관 해임건의안까지 통과돼 정기국회 내내 여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다음주 시작되는 국정감사부터 여야 대립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민주당은 27일 의원총회에서 윤 대통령의 영국·캐나다·미국 순방 외교를 ‘외교 참사’로 규정한 뒤 박 장관 해임결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해임건의안에는 민주당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이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마침 같은 날 본회의가 예정돼 있어 해임건의안은 곧바로 본회의에 보고됐다. 국민의힘은 “해임건의를 남발하면 국회가 희화화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당초 이날 가결을 목표로 해임건의안을 발의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법에 따르면 해임건의안의 경우 본회의에 보고된 지 24시간 뒤부터 72시간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27~29일 본회의 개최가 사전에 합의돼 있는 데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도 예정돼 있어 야당에서 본회의 개회를 거부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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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 없이 사전에 정해진 의사 일정 외에 안건을 추가할 수 없다며 김 의장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날 김 의장을 찾아가 “국회가 장관을 불신임하면 어떻게 나라를 대표해 외교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겠느냐”며 “야당의 동의 없이 해임건의안을 상정하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의원총회에서는 “김 의장이 (해임건의안 상정을) 강행할 경우 의장 해임건의안을 발의해야 한다”며 거친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국회의장 재량과 무관하게 보고 후 72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상정되는 것”이라고 맞섰다.
김 의장은 “국회법을 따르겠다”며 해임건의안 상정을 시사하면서도 여야 합의를 적극 주선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실에서 막판 합의에 나섰지만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날 본회의가 합의 결렬 4시간 만인 오후 6시에 속개된 것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방한을 고려한 결과다. 주 원내대표는 “야당과 협상 과정에서 오늘 통과시키더라도 외교 일정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박 장관이 해리스 부통령 일정을 수행 중인데 (해임건의안 통과로) 등에 칼을 꽂아서야 되겠느냐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도 이 같은 여당의 주장을 수용해 해리스 부통령이 한국을 떠난 후 본회의를 열기로 결정한 셈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오전 10시께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해 윤 대통령을 만나고 미 대사관과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뒤 오후 6시에 한국을 떠났다.
한편 윤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박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이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국민들께서 자명하게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 역시 자진 사퇴 없이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박 장관은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참관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제 거취는 임명권자의 뜻에 따를 것”이라며 “제 입장은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앞서 박 장관은 해임건의안이 발의된 27일에도 “오직 국민과 국익을 위해 흔들림 없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리당략으로 다수의 힘에 의존해 국익의 마지노선인 외교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삼느냐”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제헌국회 이후 지금까지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총 6번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 중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거부한 것을 제외하면 모두 국회의 결의에 따라 장관직을 내려놓았다. 직선제 개헌 이후 국회에서 국무위원 해임결의안이 통과한 것은 총 80번이다. 이 중 44건은 ‘72시간 내 표결’ 요건을 지키지 못해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