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주요 공공기관 감사에 여권 출신 인사를 내리꽂는 낙하산 인사 관행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비대해진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감독해야 할 감사 자리를 전문성 없는 정치권 인사들이 꿰차면서 공정성 훼손 논란과 함께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공공기관 경영 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은 19일 최익규 씨를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최 신임 감사는 과거 한나라당 시절 지역구 사무국장을 지낸 여권 출신 인사다. 이후 민간 기업 근무 경력이 있지만 감사원에서 수십 년간 감사 업무를 맡아왔던 박석진·남주성 전임 감사와 비교하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앞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13일 이영애 전 의원을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이 감사는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입후보했다가 2011년 뒤늦게 의원직을 승계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한국특허학회장과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등을 지냈다.
해양수산부 산하의 한국해양과학기술원도 6일 김쌍우 전 부산시의원을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김 감사 역시 20대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자문위원을 거쳐 국민의힘 기장군수 예비 후보로 경선에 출마한 여권 인사다. 해양과학기술원은 지난해 8월에도 더불어민주당 보좌관 출신 인사가 감사로 낙점됐다는 소식에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재공모에 나선 바 있다.
환경부 산하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지난달 29일 김응박 전 보좌관을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김 감사는 2019년까지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보좌관을 지냈다. 임 의원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다. 환노위 여당 간사의 보좌관을 지낸 정치권 인사가 환노위 소관 기관의 감사로 임명된 것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이전 정부에서도 여당 의원실 보좌관 출신이 감사 자리를 차지한 적이 있다.
공공기관의 상임감사는 기관장을 견제하고 임직원의 부정부패 감시와 회계 업무를 감독하는 조직 내 ‘2인자’다.
막강한 권한과 함께 억대 연봉을 받지만 기관장과 달리 외부에 노출될 일이 별로 없어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서는 ‘꽃 보직’으로 통한다. 하지만 정권의 보은 차원에서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인사들이 감사 자리를 꿰차다 보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처럼 내부 통제 기능을 상실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국회와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공공기관 감사 자격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시행령에 예외 규정을 추가함으로써 정치권 인사의 공공기관행을 보장해줬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구조 조정을 통한 공공기관 개혁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낙하산 인사 근절 방안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전형적인 ‘엽관제’로 운영되는 공공기관 인사 시스템은 전면적으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높은 윤리 수준과 회계 지식이 요구되는 감사 자리에 전문성 없는 정치권 인사들이 오는 관행은 반드시 근절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