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업계가 ‘탈(脫)중국’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도입 이슈에 대응해 원산지 문제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SK온 등 주요 기업들은 호주 기업과 연이어 손잡고 리튬 수급에 나섰다.
30일 SK온에 따르면 회사는 28일(현지 시간) 호주 퍼스시에서 ‘글로벌리튬’ 사와 리튬 안정적 공급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2018년 설립된 글로벌리튬사는 현재 호주 2개 광산에서 대규모 리튬 정광(스포듀민)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 매장된 리튬 추정량은 총 50만 톤에 달한다.
협약에 따라 SK온은 글로벌리튬사의 광산에서 생산되는 리튬 정광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됐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리튬사가 추진하는 생산 프로젝트의 지분도 매입할 기회도 얻게 됐다. 두 회사는 광물 채굴, 리튬 중간재 생산 등 배터리와 관련한 추가적인 사업 기회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구체적인 리튬 공급 시기와 공급량은 정해지지 않았다.
SK온은 이번 MOU 체결로 IRA에 따른 부담을 일부 덜 수 있게 됐다. 호주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기 때문에 IRA 적용으로 인한 보조금 배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IRA 법안은 배터리 핵심 광물의 40% 이상을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에서 채굴·가공해야 전기차용 보조금을 주도록 했다. IRA 문제 해소와 함께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을 피해 원활한 리튬 확보처를 얻게 돼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도 긍정적이다.
이 같은 이유로 SK온은 호주 외에 캐나다·브라질·아르헨티나 등에서도 핵심 광물 확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포스코 등도 호주를 비롯해 캐나다 등 원자재 공급선 다변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2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현지 기업인 엘렉트라·애벌론·스노레이크와 리튬·황산코발트 등 핵심 광물의 공급·가공 협력을 위한 MOU를 맺었다.
협약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은 엘렉트라에서 2023년부터 3년간 황산코발트 7000톤, 애벌론에서 2025년부터 5년간 수산화리튬 5만 5000톤을 받기로 했다. 스노레이크에는 10년간 수산화리튬 20만 톤을 공급받는다.
포스코는 지난해 5월 호주의 니켈 광업·제련 회사인 레이븐소프 지분 30%를 인수했다. 또 호주의 또 다른 기업인 핸콕·필바라미네랄스와도 합작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주요 배터리 기업들의 탈중국 러시는 꼭 IRA 이슈 때문이 아니라도 중국산 리튬 의존도가 위험 수준으로 높은 상황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 성격이 강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한국의 중국산 리튬 수입 비중은 64%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일본(56%)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중국산 리튬 수입액도 16억 1500억 달러로 지난해 동기(2억 8300만 달러)보다 471% 증가했다.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상황은 예상치 못한 변수 발생 시 직격타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중국의 기후변화나 한중·한미 간 정치 상황에 따라 국내 리튬 조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은 “리튬을 직접 채굴·제련하거나 공급선을 다변화하지 않을 경우 중국발 리스크에 취약해질 수 있다”며 “친환경 리튬 채굴·제련 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육성하고 호주와 아르헨티나를 유망 대체 공급선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