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7월 경남 창원시의 한 외국인 전용 노래방. 경찰이 들이닥치자 ‘마약 파티’를 벌이던 베트남인들이 혼비백산해 도주를 시도하면서 일대에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서 마약 등을 증거로 확보하고 마약 유통·판매책 5명을 비롯한 베트남인 67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참가자를 모집해 매주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 올 초 70대 한국인 A 씨가 태국 공항에서 현지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적용된 혐의는 마약 유통. 마약이 담긴 가방을 들고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덜미가 잡힌 것이었다. A 씨는 온라인에서 가방만 전달하면 목돈을 주겠다는 이른바 ‘고액 알바’ 제의를 수락했다가 타국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단순 투약에서 유통·판매까지 국내 마약 범죄가 해마다 급증하는 배경에는 외국에서 몰래 들여오는 마약류 밀반입과 SNS 거래가 자리하고 있다. 많게는 1000㎏에 달하는 필로폰·대마·엑스터시 등이 해마다 외국에서 밀반입되고 이를 단 돈 몇만 원에 SNS상에서 손쉽게 구하는 이른바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1년에 발생하는 마약 사건만 1만 건을 웃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마약 범죄가 이미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접어든 만큼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30일 대검찰청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마약류 범죄계수는 31로 2012년 18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마약류 범죄계수는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 수를 의미한다. 같은 기간 외국인 마약류 범죄계수는 국내 전체보다 3.2배 높은 100을 기록했다. 최근 10년 내 최고치다.
마약류 범죄계수가 20 이상이면 마약류 확산에 가속도가 붙어 사실상 ‘통제 불능’의 상태를 의미한다. ‘2021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태국·중국·베트남 등지에서 몰래 들여오는 마약류는 지난해 1016.1㎏에 달했다. 전년 131㎏보다 675% 급증했다.
외국인 밀반입 물량도 2017년 26㎏에서 2019년 292㎏으로 급증한 뒤 2020년 100㎏대로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급증세로 돌아섰다. 특히 마약류 밀반입이 늘면서 외국인 마약 범죄도 증가 추세다. 지난해 외국인 마약 범죄 건수는 2339건으로 4년 새 2배 넘게 폭증했다. 국적별로는 태국이 3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2017~2018년 가장 많았던 중국과 베트남이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마약 범죄는 대표적인 암수범죄(사건이 일어났으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아 정식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범죄)이기에 실제 범죄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림대산학협력단이 지난해 발표한 ‘마약류 중독자 지원 종합 대책 수립 연구’에 따르면 국내 마약 범죄 암수율은 38.57배로 추정된다. 2019년 기준 마약 사범이 1만 6044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마약 사범은 45만 8377명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마약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지만 인력과 예산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올해 기준 마약 전담 수사 인력은 288명으로 정원인 296명에 여전히 부족하다. 해마다 수사 인력이 소폭이나마 늘고 있지만 정원을 채운 건 최근 10년 새 2013년이 유일하다.
법무부의 마약 범죄 관련 예산도 연간 40억 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올해 마약 범죄 관련 예산은 43억 8500만 원이다. 지난해 48억 7610만 원보다 4억 9110만 원 줄었다. 이는 올해 마약 범죄 관련 전체 예산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인력과 예산이 마약 범죄가 증가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검찰청의 한 관계자는 “외국에서 밀반입되는 마약이 국제 택배를 이용하고 실제 수취인명까지 조작하는 등 갈수록 지능화하는 추세”라며 “태국 등에서 입국하는 마약 사범들의 경우 여권마저 조작하고 있어 적발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마약 사범이 갈수록 늘고 있는데 수사 인력과 대응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중국과 필리핀·태국 등에서 제조한 마약이 국내로 밀반입되고 SNS를 통해 누구나 마음먹으면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텔레그램 등 정부 당국이 쉽게 개입할 수 없는 경로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마약 단속 및 수사 인력을 증원하는 한편 중장기 대책을 수립해 마약 퇴치를 위한 홍보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