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톤 쌓인 작년 쌀…"창고 비우려 고구마에 쌀 끼워팔기도"

전남 영암 친환경쌀유통센터 가보니
"마진 없이 팔아 2억 손실" 한숨
"11월 돼야 햅쌀 저장 가능할듯"
쌀 생산 느는데 소비량은 줄어
올해도 25만톤 초과 생산 전망
양곡관리법 통과땐 상황 고착화
"의무 매입, 지속가능 대책 아냐"
과잉공급 구조 개선방안 내놔야

지난달 28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서영암농협 친환경쌀유통센터에 지난해 수확된 벼 알곡이 담긴 800㎏짜리 대형 포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영암=오승현 기자

지난달 28일 찾은 전남 영암군 서영암농협 친환경쌀유통센터. 330㎡(100평) 규모의 저온 창고에 벼 알곡이 담긴 800㎏짜리 대형 포대 550개가 4단으로 빼곡히 쌓여 있었다. 모두 지난해 수확된 벼로 그 규모만 총 440톤에 달한다. 김광옥 서영암농협 상무는 “지난해는 8월 말 창고가 비어서 10월부터 수확될 벼를 받을 준비를 했다”며 “올해는 창고 여력이 없어 11월이나 돼야 겨우 신곡(新穀)을 들일 듯하다”고 말했다.


창고 3곳에 최대 1350톤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센터에 저장된 벼 물량은 이날 기준 816톤이다. 직원들은 신곡을 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창고를 비우고 있다. 김 상무는 “창고 하나를 비우려고 지난주까지 쌀 440톤을 마진도 못 남기고 팔았다”며 “손실만 2억 원이 넘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홍보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1만 5900원짜리 고구마 한 박스를 팔면서 증정품으로 쌀 4000원어치를 끼워주기도 했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매년 줄어드는 쌀 소비로 쌀값은 급락하는데 전국의 쌀 창고는 초과 생산된 채 팔리지 않은 물량으로 넘쳐 난다. 창고를 비워내기 위해 고구마에 쌀을 얹어주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비단 이곳만의 문제는 아니다. 농협이 보유한 재고는 8월 말 기준 31만 톤으로 전년 동기보다 16만 톤이나 많다. 재고가 많이 남은 것은 생산은 늘었는데 소비가 뚝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2020년보다 10.7% 증가한 338만 2000톤. 예상 소비량에 견줘 26만 8000톤이 과잉 생산된 것이다. 현장에서는 정부 예상보다 소비가 더 많이 줄었다는 푸념이 나온다. 전남 지역농협의 한 관계자는 “당장 주 판매처인 학교에서 쌀 구입량을 대폭 줄였다”며 “거리 두기 완화로 대면 수업이 재개돼 상황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학교 측은 학생들이 밥을 잘 안 먹는다며 쌀 구입을 줄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서영암농협 친환경쌀유통센터에 지난해 수확된 벼 알곡이 담긴 800㎏짜리 대형 포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영암=오승현 기자

내년 상황도 암울하다. 정부는 올해 쌀 생산량은 386만 톤으로 예상 소비량보다 약 25만 톤 초과 생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상무는 “쌀 소비가 급감해 이제는 평년작(풍년이 아닌 보통 정도로 된 농사)만 돼도 걱정해야 할 판”이라며 “쌀 판매만으로는 인건비도 못 건져서 고구마나 옥수수 등 대체 작물 판매로 겨우 버티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설상가상으로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 같은 구조는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쌀 생산량은 연평균 0.7% 줄어든 반면 소비량은 2.2%나 급감했다. 소비가 더 가파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생산을 과감히 줄이지 않으면 쌀값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당장은 정부가 시장 격리(쌀 매입)에 나서는 것은 맞지만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정부 개입은 지속 가능한 대책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시장 격리는 쌀 수매와 보관, 재판매 등 전 과정에서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 가장 최근 수확기 시장 격리가 있었던 2017년의 경우 정부는 쌀 37만 톤을 수매하는 데 6684억 원을 썼다. 이후 현재까지 보관에 344억 원, 매입 자금에 대한 이자 비용으로 672억 원을 투입했다. 정부는 수매 2~3년 뒤 가공용이나 주정용 등으로 매입가의 10% 내외에 쌀을 재판매한다. 가공용으로 재판매하면 가공비가 추가로 들어가고 보관료는 점점 늘어나게 된다. 정부가 위탁 창고에 지급하는 보관료의 경우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2년마다 오르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돼 쌀 시장 격리 조치가 의무화될 경우 쌀 초과 생산량이 연평균 46만 8000톤으로 늘어나면서 올해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조 443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이러한 이유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난색을 표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쌀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해 벼 대신 콩 등 다른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정부가 전량 사들이는 타 작물 전환 사업은 2018년 시행 후 3년 만에 종료됐다. 익명을 요청한 국책 연구 기관의 연구원은 “쌀 매입 의무화 시 대체 작물 전환, 수출 판로 개척 등 장기적인 대책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개정안 통과를 막는 동시에 정부가 쌀 과잉 공급 구조를 바꿀 근본적인 대책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암=곽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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