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에서 북동아시아에 걸쳐 있는 러시아 알타이산맥의 한 산등성이에 자리한 데니소바 동굴. 이곳에서 발견된 뼈나 치아 조각 8개 화석 중 4개는 아시아 일부에 거주했다고 짐작되는 ‘데니소바인’, 3개는 유럽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1개는 그 혼혈로 조사됐다.
과학계에서는 이 시베리아 동굴에 데니소바인은 약 19만 년 전 이전부터 약 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은 약 14만~8만 년 전, 혼혈은 약 10만 년 전에 거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대 의대 노벨위원회에서 3일 ‘2022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스웨덴 출신의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장은 바로 이런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을 연구해 오늘날 인류의 친척인 네안데르탈인의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예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고인류((비현생인류·hominins)인 데니소바인도 발견했다.
페보 소장은 의사 출신의 인류학 연구자로 진화인류학자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014년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라는 책으로도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의 부친인 스웨덴 생화학자 수네 베리스트룀도 1982년 다른 과학자 두 명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부자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일곱 번째다.
페보 소장과 연구팀은 지난 2008년 데니소바 여자아이의 손가락 뼈에서 얻은 30㎎의 시료에서 추출한 손상된 DNA를 재조합해 유전자 지도를 해독했다. 이 화석의 주인이 4만 년 전 사라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사이에서 태어난 10대 소녀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2018년 8월 네이처에 발표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상호 성적인 접촉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페보 박사는 현대 유럽인의 1~2%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아시아인은 1~6%가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를 각각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벨위원회는 “7만 년 전 아프리카 밖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던 이들 고인류의 유전자가 호모사피엔스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고대 유전자의 이동에 대한 연구는 현재 우리 면역 체계의 감염 반응 연구 등과 같은 생리학적 가치와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페보 소장은 현대인에게 흔히 발생하는 대사질환(혈전증·고지혈증·동맥경화증·고혈압·당뇨병 등)을 일으키는 DNA가 네안데르탈인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노벨위원회는 “현대인과 예전에 멸종된 고대인을 구별하는 유전적 차이를 규명했으며 ‘원시게놈학(paleogenomics)’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확립했다”고 평가했다.
페보 소장은 나아가 코로나19 감염 환자의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인간 게놈의 0.002%에 해당하는 부위가 증상 발현 차이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규명했다. 박웅양 삼성서울병원 유전체연구소장은 “사람마다 코로나19 감염의 양상이 다른 이유가 고대 네안데르탈인에서부터 유래했음을 밝혔다”고 높이 평가했다.
6년 만에 단독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된 페보 소장은 1000만 스웨덴크로나(약 13억 7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 노벨위원회는 4일 물리학상, 5일 화학상, 6일 문학상, 7일 평화상, 10일 경제학상 순으로 온라인(NobelPrize.org)을 통해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