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미국 중고 패션 거래 플랫폼 ‘포시마크’ 인수를 계기로 북미 시장 진출을 가속화한다. 인수 금액은 네이버 자체 기준 역대 최대인 2조 3441억 원이다. 기존 최대 기록이었던 지난해 1월 ‘왓패드(6억 달러·약 8600억 원)’를 크게 웃돈다. 네이버의 인수 규모 1·2위인 포시마크와 왓패드 모두 북미 시장을 겨냥한다.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웹툰 플랫폼 ‘웹툰(WEBTOON)’과 함께 글로벌 이용자 1억 7000만 명의 북미 콘텐츠 거점으로 만든 것처럼 포시마크 역시 북미 커머스 거점으로 삼고 기존 콘텐츠 사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C2C 글로벌 최강자 없어…독보적 1위 도전”=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4일 포시마크 인수 발표 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포시마크는 (앞서 북미에 진출한) 웹툰·왓패드·위버스(하이브와 합작해 만든 팬덤 플랫폼)처럼 버티컬(특정 분야 전문) 커뮤니티 서비스로도 볼 수 있다”며 “서로 유사한 이용자군을 보유하고 있어 마케팅 이벤트를 벌이거나 웹툰·왓패드에서 유명한 사람을 라이브커머스(생방송 쇼핑) 셀러(판매자)로 부르는 등의 다양한 시너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네이버가 북미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 간 시너지에 방점을 두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런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네이버는 우선 검색·인공지능(AI)·라이브커머스 등 자사 기술과 플랫폼 운영 노하우를 총동원해 포시마크를 개인간거래(C2C) 시장의 독보적인 1위로 도약시킨다는 계획이다. 최 대표는 “C2C는 아직 글로벌 최강자가 없어 네이버에 (1위를 차지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북미에서 포시마크를 중심으로 독보적 1위 C2C 사업자로 거듭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C2C는 한국 크림, 일본 빈티지시티, 유럽 왈라팝 등 네이버가 경쟁력 확보에 공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신사업이기도 하다. C2C를 북미 커머스 진출의 교두보로 점찍은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C2C 시장 자체의 성장성이다. 시장조사업체 액티베이트컨설팅에 따르면 미국의 C2C 시장은 지난해부터 연평균 20% 성장해 2025년 1300억 달러(약 185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C2C 성장의 배경에는 경제활동인구로 자리매김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생)가 있다. 포시마크 역시 이용자의 80%가 MZ세대다.
포시마크 역시 거래액이 매년 20~30% 성장을 거듭해왔다. 누적 이용자는 8000만 명, 지난해 연간 거래액은 18억 달러(약 2조 6000억 원), 매출은 3억 3000만 달러(약 4700억 원)였다. 올해 들어 글로벌 정세와 코로나19 엔데믹 전환에 거래액 성장률 목표치는 10%대로 낮아졌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그럼에도 김남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광고 등 새로운 매출 수단이 많고 네이버의 기술적 지원도 가능해 중기적으로 예년의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C2C, 2025년 185조 원 시장…검색 불모지 美 개척 활로=C2C 서비스는 이용자 간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커뮤니티 기능이 꼭 필요하다. 블로그·카페·밴드·제페토(메타버스) 등 네이버의 커뮤니티 운영 노하우를 접목할 최적의 C2C라는 게 포시마크 인수 결정의 두 번째 이유다.
포시마크는 커머스 플랫폼임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처럼 커뮤니티 활성 이용자는 3700만 명, ‘좋아요’와 ‘공유’ 건수는 매일 10억 건에 달한다. 이용자가 ‘옷장’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패션 상품을 공유하고 ‘팔로잉’하고 특정 주제로 다른 이용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포시파티’라는 동영상 기능도 지원한다. 이용자가 구매 목적 없이도 포시마크 커뮤니티를 이용하다가 자기 취향에 맞는 상품을 발견할 수 있는 구조다.
세 번째 이유 역시 포시마크의 커뮤니티 잠재력과 관련이 있는데 검색 포털과의 초기 시너지 없이도 자생하기 위한 최선의 커머스 사업이 C2C라는 판단이다. 네이버가 국내에서 거래액 기준 1위 사업자로 성장시키고 일본에도 같은 방식으로 진출 중인 ‘스마트스토어’ 모델은 양국의 국민 검색 포털(네이버·야후재팬)의 막강한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 검색 시장에서는 네이버가 구글 등에 밀려 별다른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국내 네이버 포털 이용자(월간 4000만 명) 규모의 자체 커뮤니티를 갖춘 현지 플랫폼이 네이버에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 입성…“글로벌 빅테크 도약 시험대”=이번 인수는 글로벌 정보기술(IT) 산업의 메카인 실리콘밸리에 네이버가 처음 진출했다는 의미도 있다. 포시마크는 2011년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됐다. 올해 초 대표직에 오르며 글로벌 진출을 최우선 목표로 내걸었던 최 대표는 “네이버가 실리콘밸리 회사를 상대로 ‘해줄 수 있는 게 많다’고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그동안 네이버가 잘해왔다는 의미”라며 “네이버는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기 위한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포시마크와 연계할 웹툰·왓패드는 한류 인기에 힘입어 이미 북미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글로벌 이용자는 1억 8000만 명, 올해 2분기 웹툰 거래액(왓패드 제외)은 167억 원으로 일본·한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왓패드스튜디오를 통해 영상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20건 이상의 작품이 제작 중이며 영화 ‘애프터 에버 해피’는 최근 현지 개봉 후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