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與野 표심 잡기 선심 경쟁, 국가 재정은 누가 지키나

정부의 지출을 제어하는 재정 준칙이 도입되지 않으면 국민 1인당 국가 채무가 1억 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추계한 ‘2022~2070 국가 채무 장기 전망’에 따르면 재정 준칙 없이 기존 재정 정책과 제도가 지속될 경우 국가 채무가 2060년에 5625조 원, 2070년에는 7138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1인당 국가채무액은 2060년 1억 3197만 원에 이르고 2070년에는 2억 원에 육박하게 된다.


이런데도 여야는 재정 건전성 확보 방안을 고민하기는커녕 선심 경쟁에만 몰입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쌀 재배 농가의 표를 겨냥해 매년 남아도는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 법안대로라면 해마다 쌀 매입에 1조 원이 넘는 세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정부와 여당도 올 예상 쌀 생산량의 23.3%에 달하는 90만 톤을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야 모두 ‘쌀값 안정화’를 내세우지만 농심을 잡기 위해 혈세로 쌀값을 떠받치고 과잉생산을 방치하겠다는 발상이다.


여야의 고령층 환심 사기도 치열하다. 민주당이 기초연금을 월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려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겠다고 하자 국민의힘도 단계적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가세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최근 국회 대표 연설에서 ‘기본 사회 실현’을 거론하며 기본 소득·주택·대출 등 선심 정책들을 다시 꺼냈다. 윤석열 정부가 대선 공약인 ‘병사 월급 200만 원’을 계속 추진하는 것도 청년 표심을 의식한 것이다.


최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감세 정책을 철회한 것도 근본적으로 재정 적자 때문이다.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2021년에 102.8%로 급증했다. 국가 부채가 너무 많이 쌓이고 나라 곳간이 텅 비게 되면 경제 위기 때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제한된다. 여야가 나랏빚을 늘리는 포퓰리즘 경쟁에 빠지면 누가 국가 재정을 지키겠는가. 정치권은 선심 경쟁을 중단하고 서둘러 강도 높은 재정 준칙 법제화에 나서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