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옥 칼럼]중국의 반도체 참호전을 보는 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美 반도체 제재 움직임 거세지자
막대한 자본 투입해 자립화 나서
韓, 중국 허 찌를 신병기 만들려면
베일 싸인 상대 전략 먼저 살펴야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효용 극대화에 기초한 글로벌 가치사슬 체계가 무너지고 경제안보를 목표로 하는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자유주의국가와 연대를 통해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쿼드(Quad), 민주주의 정상회의와 같은 느슨한 연대에서 점차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 동맹으로 구체화되고 있으며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와 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속속 통과시키고 있다.


특히 미국은 당분간 미중 간 게임체인저는 반도체 산업에서 온다고 보고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미래 산업의 쌀인 반도체마저 추격을 허용한다면 쇠퇴하는 미국 패권을 더는 회복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다른 미래 산업과 달리 반도체 분야만큼은 설계·생산·패키징과 테스트, 유통 전 영역에서 비교열위에 있다. 또한 외국기술·장비 및 지적재산권은 전적으로 미국과 선진국에 의존하며 첨단 반도체 분야의 핵심 인력 확보에도 애를 먹고 있다. 더구나 최근 미국 상무부가 인공지능용 반도체 칩마저 대중 수출을 제한하면서 관련 산업마저 흔들리고 있다.


중국도 이러한 미국의 반도체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참호를 파고 자립화의 길을 선택했다. 물론 첨단 제조 장비 도입은 미국의 규제에 막혀 있고 반도체 기술 축적의 성격상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자 한다. 우선 전 세계 3분의 1을 차지하는 반도체 소비 시장을 통해 얻는 수익성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둘째, 빅펀드 조성, 기업의 인수합병, 법인세 면제와 저이자 대출을 통한 공장 유치, 파격적인 인력 스카우트 등과 같은 국가 차원의 총력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셋째, 빅데이터·양자컴퓨팅·5세대(5G)로 대표되는 통신장비, 위성항법장치, 인공지능의 상업화에서 거둔 성과를 반도체 기술 개발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취약한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의 EUV 장비 수출제한으로 미세공정 부분은 벽에 부딪혔으나 기존의 노광기술을 활용해 10나노까지 확장하는 우회로를 개척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보기술(IT) 제품은 현재 중국의 성숙 기술만으로도 당분간 버틸 수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이 제재할 가능성이 있는 부품과 소재를 골라내 반도체 전 공정에서 차단하는 ‘공급망 정화 작업’을 전개하는 한편 이를 대체하는 플랜B도 준비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제재로 직격탄을 맞았던 화웨이가 반도체 파운드리 팹 건설을 시작했고 가동을 눈앞에 두고 있다. 10월 16일 개최되는 중국공산당 제20차 당 대회는 시진핑 3기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정책 기조를 ‘강한 중국’과 ‘중국의 길’에 두면서 반도체 산업 자립화에 정권의 명운을 거는 걸음도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 방향은 반도체 가전에서 설계와 설비 제조에 이르는 수직분업을 추구하는 삼성전자 모델을 염두에 두고 거국 동원 체제를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유럽의 장비와 설계, 일본에 의존하는 소재와 부품, 대만의 파운드리 등을 제외하고는 한국과 기술 격차는 거의 사라졌다. 이것은 반도체에 의존하는 우리의 대중국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중국 반도체 펀드의 방만한 운용, 치명적인 기술 결함, 혁신 역량 한계에 대한 보도는 쏟아지고 있으나 중국 정부의 무제한적 자본 투입, 군민융합발전, 성숙 기술에서 만든 기술적 진전, 철저한 보안 속에서 전개되는 중국의 반도체 대전략에 관한 동태 파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아는 전문가도 많지 않다. 미래 한국의 반도체 전략은 핵심 인력을 확보하고 기술 유출을 방지하며 초격차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산 제약 속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최종병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중국의 참호 속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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