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高 쓰나미’에…‘워룸’ 가동 시작한 대기업[뒷북비즈]

■대기업 총수, 경영위기 총력 대응
구광모, 3년만에 '대면 회의' 주재
최태원, 이달 CEO와 사업전략 점검
투자대책 수립 등 비상경영 구축

지난달 29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LG 사장단 워크샵’에서 구광모(왼쪽) ㈜LG 대표가 최고경영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LG

대기업들이 ‘워룸(war room·지휘통제실)’ 가동에 돌입했다. 총수들이 사장단 회의를 긴급 소집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쓰나미’ 상황을 살피고 투자 계획과 사업 방향을 재점검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기업들이 전시(戰時)에 준하는 비상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9일 재계에 따르면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29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전자·디스플레이·화학 등 주요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하는 대면 워크숍을 주재했다. LG그룹이 대면 사장단 워크숍을 개최한 것은 2019년 이후 3년 만이다. 구 회장과 사장단은 복합 위기 상황을 체크하고 대응 방안을 집중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구 회장은 주요 안건인 ‘고객 가치 강화’와 함께 강도 높은 위기 대응책 마련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도 최태원 회장 주재로 이달 ‘CEO 세미나’를 사흘간 열고 위기 상황에 대한 ‘컨틴전시 플랜(위기 대응 비상 계획)’을 마련한다. 배터리를 비롯한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 등 해외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투자 비용 부담을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그룹 역시 이달 사장단과 전 임원이 참석하는 그룹 경영 회의를 열기로 했다. 7월 사장단 회의에 이어 3개월 만에 또다시 긴급회의를 갖는 것이다. 재고자산이 증가하고 철강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해 현금 중심의 긴축 경영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지난달 26일 2년여 만에 전자·금융 계열사 사장단 40여 명이 모인 사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오찬을 함께하며 경영 환경을 체크하고 향후 전략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이슈가 있는 현대차그룹은 수시로 대책 회의를 열고 있다.




이 같은 총수들의 활로 찾기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악화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해 투자 감축이 속속 이어지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복합 위기 가속화에 대응해 상당수 내부 미집행 사업을 보류·축소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불필요한 지출을 감축해 대형 투자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경영 전략을 전환한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6월 글로벌 경영 불확실성 증가에 따라 4조 3000억 원 규모의 청주 공장 증설 투자를 전격 보류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이사회를 통해 3600억 원 규모의 상압증류공정(CDU)·감압증류공정(VDU) 설비 신규 투자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한화솔루션은 1600억 원 규모의 질산유도품(DNT) 생산 공장 설립 계획을 철회했다. 이밖에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포스코그룹은 8월 동국제강과 함께 브라질 CSP 제철소 지분을 아르셀로미탈에 매각하면서 부실 해외 투자 정리에 나섰다. 포항제철소 복구에 상당한 자금이 투입되고 현재 철강 가격 역시 생산원가까지 근접하면서 포스코그룹은 이달 회의에서 투자 계획 조정과 해외 법인 리스크 재점검 등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그룹도 권오갑 회장이 7월 “각 사는 경영전략을 수시로 점검하고 필요하면 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사업 재편을 검토하고 있다.


투자 축소를 넘어서 비용 감축을 위해 ‘임금 삭감’까지 추진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지주회사인 한국앤컴퍼니는 4월부터 전 계열사 임원의 임금을 최대 20% 삭감하기로 했다.


전시에 준하는 기업들의 비상경영 돌입은 대외 환경이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하나만 닥쳐도 심각한 경영 위기로 작용할 변수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상황이어서 개별 기업이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한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은 6월 1252원에서 지난달 28일 기준 1439원으로 14.9%(187원)나 급등했다. 기준금리는 미국의 연이은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 여파로 계속 급등해 올 초 1.25%에서 2.5%까지 두 배나 뛴 상태다. 금리 부담이 급등하면서 대한상의 조사에서 기업 61.2%가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하는 등 기업 부담이 치솟는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선제적인 대응이 어려울 정도로 대외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여기에 평시 수준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라며 “기업의 투자 위축으로 경기 불황이 길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어 정부 등 다방면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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