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경영계획 짜야 하는데…답 없는 정부에 기업만 ‘한숨’

◆巨野에 막힌 법인세 인하…경제위기 속 불확실성 증폭
野의원에 설명회 열고 설득 불구
올 세제개편안 여야 이견 그대로
기업, 자산매각·투자 등 ‘불투명’
당정은 뚜렷한 해결방안 못 찾아
일각 “차라리 1년간 유예 선언을”

추경호(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법인세 인하 방안이 도리어 기업들의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거대 야당이 법인세 감면을 ‘초부자 감세’라며 강력 반대하는 가운데 정부도 뚜렷한 돌파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앞서 추진한 종합부동산세 3억 원 특별공제(종부세 인하)가 사실상 무산됐는데도 아직까지 공식 포기 선언도 하지 않아 납세자들의 불안만 키우고 있는 상태다.






10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제출한 법인세 인하 방안은 여야 간 이견이 전혀 좁혀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잇달아 설명회 등을 개최하면서 도입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지만 “법인세 인하는 어차피 국회 통과가 어려우니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냉랭한 반응이 더 많다고 한다.


4~5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기획재정위원회에 소속된 대다수 야당 의원들이 법인세 인하 수용 불가 방침을 드러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인세 인하를 통한 성장론(論)은 하버드대 교수들도 ‘가짜 만병통치약’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공세에 나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법인세 인하 절대 불가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야당 의원들도 단일 대오로 전선을 형성하는 구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당장 내년도 경영전략을 짜야 하는 기업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기업들은 추석 연휴 이후 내년도 경영계획 입안에 들어가는데 환율·원자재·금리 같은 변수에 더해 법인세까지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 계획 수립에 애를 먹고 있다.


단순히 법인세 감면액이 어느 정도인지를 추산하기 어렵다는 수준이 아니다. 법인세 인하 여부에 따라 토지 등 자산 매각 시점, 법인세 인하분을 활용한 재투자 계획 수립 등 경영 전반이 이번 세법 개정에 따라 완전히 꼬여 버릴 수도 있다는 게 기업인들의 하소연이다. 국내 화학 계열 대기업에서 경영전략 수립을 맡고 있는 한 부사장급 임원은 “예년 같으면 내년 경영전략을 최종 확정하기 위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지금은 워낙 불확실성이 크다”며 “대외 요인도 복잡한데 국내 정치적 요인까지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야당의 반발을 돌파해 낼 당정의 구체적인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 내부에서는 법인세 인하도 야당의 반대로 불발된 종부세 완화 전철을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마저 나온다.


정부는 앞서 1세대 1주택자를 대상으로 종부세 비과세 기준을 기존 11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3억 원 올리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현재 국회 논의가 중단됐다. 보유 주택 공시가격이 11억~14억 원에 속하는 1주택자 9만 3000명은 올해 세금을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 몰려 있다. 정부는 “법인세 인하는 순기능이 더 크기 때문에 야당이 논리적으로 반대하기 어려울 것(기재부 고위 관계자)”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올해 세법 개정안이 이미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학생 취업률이 45%에 불과한데 법인세 인하는 청년 고용을 늘릴 수 있는 해법 중 하나”라며 “논리적 설득이 어렵다면 야당과 정치적 ‘빅딜’을 해서라도 반드시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가 일각에서는 야당과 정상적 논의가 어렵다면 차라리 법인세 인하 1년 유보를 선언하고 남는 세수(稅收)를 활용해 경기 침체에 대응한 확대 지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올해 세제 개편을 통한 내년도 세수 감소액이 6조 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세법 개정이 불발될 경우 이 돈은 그대로 용처 없이 국고에 저장된다.


민간연구소의 한 임원은 “기업이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과 세금인데 지금은 두 문제가 하나로 엮여 있다”며 “어차피 내년부터 경기 침체로 접어든다고 본다면 통화정책으로는 한계가 있고 재정지출 정책이 필요한 만큼 야당에 끌려다니지 말고 적극적 전략 변화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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