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글로벌 통화 긴축에 따른 고금리·고환율·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1.5%포인트 더 올리면 기업들이 추가로 갚아야 할 대출 이자가 연간 18조 원을 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이 한미 간 벌어진 금리 격차와 고물가 등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향후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서울경제가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과 기준금리 인상과 기업대출 이자 상환 부담 관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가 1.5% 포인트 인상되면 국내 기업들의 연간 이자 부담액은 18조 38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금리가 1.25%포인트 오르면 기업의 이자 부담은 15조 3100억 원, 1%포인트 인상 시 12조 2500억 원, 0.75%포인트 인상 시 9조 1900억 원이 추가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상호 한경연 경제조사팀장은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기업대출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금융채·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움직이면서 대출금리를 끌어올린다”며 “계량 분석 결과 한은이 기준금리를 0.5~1.5%포인트 인상하면 금융권의 기업대출 금리는 0.52~1.55%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2.5%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올해 말까지 두 차례(10월 12일, 11월 24일) 남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최소 한 번 이상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커진 데다 최근 국내 물가도 고공 행진해 두 달 연속 빅스텝을 단행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금융권 대출을 이용하는 기업들의 연간 이자 부담이 적게는 9조 원에서 최악의 경우 18조 원대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기업들의 자금 조달 창구인 회사채 시장마저 금리 발작으로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의 자금난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회사채 발행 시장에서 기업들은 신용등급이 높아도 자금 조달에 애를 먹거나 설사 목표 금액을 달성하더라도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26일 실시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1000억 원 모집에 3100억 원의 청약이 몰렸지만 우량한 신용등급(AA)임에도 5%대의 금리로 발행했다. 최고 등급인 한국전력(AAA)도 이달 4일 38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5% 이상 금리를 제시했다. 한전채 발행 금리가 5%대 중반까지 오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성적표는 더욱 초라하다. 올 7월 회사채 780억 원 모집에 나선 통영에코파워(A+)는 10억 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GS그룹 계열사 GS엔택(A0)도 800억 원의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모집액은 200억 원에 머물렀다.
이 같은 현상을 반영하듯 지난달 회사채 발행 규모(금융투자협회 기준)는 5조 3438억 원으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 1월(8조 7709억 원)보다 39.1% 줄었고 지난해 같은 달(8조 4950억 원) 대비 37.1% 급감했다.
통상 신용등급이 낮아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기업들은 금융권 대출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달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9월 말 기준 기업대출 총 잔액(694조 8990억 원)이 한 달 사이 7조 4719억 원이나 불어난 것이 방증이다. 하지만 최근 가파른 금리 인상이 기업대출 금리에도 반영되면서 은행 문을 두드리는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미 간 금리 역전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서 자본 유출, 원화 가치 하락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큰 폭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금리 인상에 따른 기업들의 대출이자 부담 증가, 회사채 시장 경색에 따른 기업 자금 조달 애로 등은 정부나 금융 당국이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해소해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