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라도 산재 치료 우선 원칙… 단속 재개로 흔들릴까

정부, 산재신청 시 강제출국 안심 안내했지만
출국 불안에 노무사 조력받거나 신청없이 일
단속 재개하면서 산재 신청 기피 더 심해질 듯
자유로운 이직 요구하지만…제도 변경 난망

2020년 12월 2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숙소 산재사망 진상 규명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가 같은 달 20일 목숨을 잃은 캄보디아 출신 여성 노동자의 숙소 사진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산재보험은 노동자라면 모두 적용된다. 불법체류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라도 산업재해(산재) 보상이 가능하고, 산재신청으로 신분이 노출되더라도 바로 강제 출국 조치를 당하는 게 아니다.’(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 외국어가이드)


법무부가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 단속을 재개하면서 이들이 누려야 할 치료권이 훼손될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라도 산재로 인한 부상 치료와 보상을 안심하고 받으라고 안내해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안내가 법제화되지 못해 산재 신청을 했다가 강제 출국이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제도 보완 없이 단속만 되풀이하면 이주 노동자의 삶이 더 힘들어진다.


12일 서울경제가 복지공단에 확인한 결과 공단은 외국인 근로자가 산재를 당하면 합법과 불법 체류를 따지지 않고 산재 심사 절차에 따라 동일하게 산재 보상을 한다. 사망산재의 경우 대사관 등의 도움을 받아 사망자 본국의 유가족에게 보상금까지 전달한다. 모든 근로자는 안전하게 일하고 다치면 치료와 보상을 받을 권리를 외국인도 예외 없이 적용한 것이다.


그런데 5일 법무부가 고용부 등 부처 합동으로 두 달 간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 단속을 재개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0여곳의 전국이주인권단체는 1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단속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해마다 강제 단속을 통해 3만~4만명을 추방시켰다”며 “2000년대 이후 미등록 이주민(불법 체류 외국인) 30여명이 단속을 피하려다가 직·간접적 사고로 사망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단속은 복지공단이 안내해 온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산재 우선 원칙’의 시험대로 볼 수 있다. 이미 공단은 ‘안내’가 무색하게 치료를 마친 이들에 대한 정보를 강제 출국 담당인 출입국사무소로 넘기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는 산재 신청을 해야할 지 망설여왔다. 이들은 돕는 산재 조력 전문 노무사들이 상당한 규모를 이룰 정도다. 특히 이주인권단체들은 이번 단속 과정에서 산재를 당해 출국을 미뤄 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우려한다.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은 “그동안 단속에 적발된 근로자가 산재를 인정받아 출국이 연기된 경우를 듣지 못했다”며 “출국 연기는 비자를 획득한 외국인만 가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등록 이주민이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정책을 단속 위주로만 접근할 때 일어날 역효과다. 일하다 다쳐도 제대로 된 치료와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들의 열악한 숙소, 임금체불, 강제노동 등은 사회적 문제로 인식됐다. 사고 위험이 높은 낡은 설비로 일을 하더라도 고용 불안, 언어 미숙 등으로 제대로 문제 제기를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산재 보상 보다 개인 합의인 공상 처리를 하는 외국인 사업장도 많다고 알려졌다. 공상 처리는 불법 체류 신분인 근로자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 합동단속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다쳐도 산재 신청 없이 일하고 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고용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 등록 외국인 근로자는 50여만명이었다. 2020년과 작년에도 평균 30여만명이 국내에 체류한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20~2021년 평균 8200여건의 외국인 산재 신청이 이뤄졌다. 작년 등록 외국인 근로자의 산재 신청율은 약 2.7%인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불법 체류 외국인의 산재 신청은 평균 470여건에 그쳤다. 불법 체류 외국인이 30여만명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산재 신청률은 0.16%에 불과하다. 수치는 이들이 건설현장과 같이 고되고 위험한 일터에서 주로 일하는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주인권단체들은 해결방안 중 하나로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을 더 풀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외국인 근로자가 이직을 자유롭게 해야 사업주 스스로 이들을 고용하기 위해 임금과 복지를 높인다는 것이다. 송 사무국장은 “불법 체류가 발생하는 이유를 보면 사업장을 변경하는 과정이 대부분”이라며 “힘든 사업장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사업주가 동의를 하지 않아 다른 사업장을 찾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작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외국인의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제한하는 게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영계도 사업장 변경 제한이 풀어지면 인력난이 심해진다고 우려한다. 고용부는 법 위반을 비롯해 열악한 숙소, 산재, 임금체불 등 근로자가 무관한 이유로 근무하기 어려울 때도 사업장 변경을 허가한다. 하지만 사업장 변경제에 대한 노사 이견이 커 제도 개선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법무부는 단속 방침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이 단속을 거부하면 압수수색 영장을 발급 받아 단속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겠다”며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고 안전사고 예방, 인권보호도 철저히 지키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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