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콘텐츠의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위상 역시 높아지면서 한류 팬들도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프로슈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교 기념행사 등을 주최·주관하면서 현지에서 느낀 분위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류는 하나의 문화 현상에서 이제 장르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팬들과 소통하며 다시 창작되고 진화하는 한류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길화(사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은 1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소프트 파워의 증진, 문화 매력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매일매일 체감하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대면으로 개최한 한국 문화 축제가 국내외 관람객으로부터 극찬을 받는 등 성황리에 개최된 것을 비롯해 카자스흐탄·미국·호주 등과 잇달아 수교 한류 행사를 개최하면서 그가 느낀 소감을 이같이 전했다.
특히 한국 문화 축제는 BTS,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의 글로벌 인기에 힘입어 한류 팬덤이 최정점에 달한 데다 마스크를 벗고 처음 개최하는 행사인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진흥원이 추산한 결과 행사 기간 중 각각 생산 유발 효과가 약 573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약 273억 원에 달해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국내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원장은 “‘언제까지 영국의 에든버러 축제,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을 부러워만 할 것인가’, 우리도 외국인이 찾아와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자는 취지로 기획했다”며 “올해는 관광 시즌인 10월 초에 개최해서 ‘인바운드 투어’와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이것이 적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류 팬이 프로슈머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것이 한류를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며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9월 수교 30주년 기념 ‘한·베트남 등불 문화 축제’에 무려 8만여 명이 다녀갔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수교 행사에서는 ‘우영우 김밥’ 등 체험 코스가 장사진을 이뤄 2021년은 ‘오징어 게임’의 ‘달고나’, 2022년은 ‘우영우 김밥’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류 콘텐츠에 등장하는 한국의 모든 것이 상품이 되고 다시 한국의 제품을 외국 한류 팬들이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데 참여해 뜻밖의 K콘텐츠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과거에 한류는 흘러가는 유행으로 치부됐지만 이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문화의 주류로 떠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원장은 이처럼 한류가 주류로 떠오를 수 있었던 비결로 정보기술(IT)과 한국 경제·문화의 글로벌화를 꼽았다. K팝·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빠른 유통이 가능하도록 한 플랫폼, 경제 발전과 함께한 문화의 세계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한류가 인기를 얻게 된 시대적 배경을 짚어 볼 필요가 있는데 인터넷을 통해서 ‘상상 공동체’인 세계를 직접 실현하고 이용하게 됐다”며 “이것이 한류가 어필하게 된 핵심적인 계기다. 빠르고 획기적인 미디어 변화가 한국에서 이뤄져 이런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화라는 추세에 적응한 글로벌한 문화적 현상이 바로 한류로 변화하는 시기에 잘 맞아떨어졌다”며 “여기에 대한민국이 지난 70여 년에 걸쳐 이룬 산업화와 민주화는 한류의 선행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한류가 ‘보편성’과 ‘독창성’을 두루 갖춘 산물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런 것들이 작용했다는 뜻이다.
그는 한류 콘텐츠와 팬덤이 지속 가능한 장르가 되기 위해 ‘착한 한류’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도 역설했다. 그는 “그동안 한류의 일방주의나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았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쌍방 한류, 공감 한류, 교류 한류 등 ‘착한 한류’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를 위해 진흥원은 ‘동반 성장 디딤돌’ 등 해외 아티스트들이 한국에서 체계적으로 연수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해에는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블랙핑크 리사의 태국 고향 마을에 K팝 댄스 아카데미 교실을 만들어 기증하기도 했다.
정 원장은 마지막으로 민간에서 하지 못하는 ‘착한 한류’ 등을 추진하고 국제사회에서 한류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국제 문화 교류와 한류를 활성화하는 기관인 진흥원을 공공기관으로 승격하고 법인 법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진흥원은 공공기관이 아닌 공직 유관 단체로 돼 있다”며 “창립 2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제2의 창사’ 선언을 통해 진흥원의 역할을 널리 알리고 위상을 제고하는 한편 공공기관 승격 등으로 기관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