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뛰는 물가와 환율을 잡기 위해 석 달 만에 또다시 ‘빅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으면서 국내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한층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준금리가 3.00%까지 오른 것만으로도 제조 대기업의 60%가량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본지 10월 11일자 13면 참조
서울경제가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과 기준금리 인상과 기업대출 이자 상환 부담 관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기준금리가 3.00%로 오를 경우 기업들의 연간 이자 부담은 기준금리가 2.50%일 때보다 6조 1300억 원 정도 더 급증한다. 만약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11월 24일 한 번 더 빅스텝을 밟으면 이자 부담액은 여기에서 6조 1300억 원이 더 불어난다. 한은 금통위가 한 발 더 나아가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 울트라스텝(1.00%포인트 금리 인상)까지 밟을 경우 추가되는 이자는 각각 9조 1900억 원, 12조 2500억 원에 달한다.
이상호 한경연 경제조사팀장은 “계량 분석 결과 한은이 기준금리를 0.5~1.5%포인트 인상하면 금융권의 기업대출 금리는 0.52~1.55%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단번에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대기업조차 당분간 자금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회사채 발행 규모는 5조 3438억 원으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복합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올 1월(8조 7709억 원)에 비해 39.1%나 감소한 수준이다. 현금 확보가 여의치 않은 저신용 기업들 가운데는 제2, 제3 금융권을 기웃거리는 회사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이번 빅스텝을 기점으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들도 속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경련이 시장조사 전문 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8∼18일 매출 상위 1000대 제조 기업 재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자금 사정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준금리 임계치는 평균 2.6%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59.0%는 기준금리 3.00% 이상에서는 이익으로 이자를 갚을 수 없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때마다 금융비용이 평균 2.0% 증가한다고 응답했다.
더욱이 자금 사정이 취약한 중소·중견 기업들은 경영 환경 자체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이 한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계기업(3년 연속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에 못 미친 기업)으로 분류된 중소기업은 총 3035곳으로 2017년보다 11.2% 증가했다. 경기도의 한 발광다이오드(LED) 제조기업 관계자는 “대출이자조차 못 내고 있어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부품의 50%가량을 해외에서 수입하는데 환율·금리 인상이라는 악재가 겹쳤다”고 걱정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중앙회는 금통위의 2회 연속 빅스텝에 곧바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정부와 금융권의 협조를 당부했다.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의 99.6%가 고금리 위험 대응 방안이 전혀 없거나 불충분하다고 조사됐다”며 “기준금리 3.00%에서 한계 소상공인 124만 2751곳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8월 이미 신규 취급액 기준 4.65%까지 올라 주택담보대출 금리(4.34%)를 앞질렀다”고 강조했다. 중기중앙회는 “10월 5대 시중은행의 기업부채 잔액이 가계부채 잔액보다 더 커질 것”이라며 “정부는 일시적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이 쓰러지지 않도록 정책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금융권은 과도한 대출금리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