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붐빌까 봐 아침 일찍 나왔는데, 벌써 30분째 기다리는 중이에요.”
12일 오전 9시 30분께 서울 영등포구의 한 병원. 소아과 앞 환자 대기석은 영유아 독감 백신 접종을 하러 온 부모와 자녀들이 탄 유모차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6세 아이의 백신 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은 김 모(38) 씨는 “아침부터 병원에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독감이 유행하는 ‘트윈데믹’이 현실화하면서 자녀에게 백신을 맞히려는 부모들이 병원으로 몰리고 있다. 독감 환자가 최근 1주일 동안 1~6세 영유아 중심으로 1.5배가량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유아 의사환자는 1000명당 12.1명으로 전주(7.9명) 대비 53.1% 증가해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많았다. 서울 은평구의 한 소아청소년과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는 “환절기와 겹쳐 이틀 전부터 감기 환자, 독감 백신 접종 방문자로 병원이 계속 붐비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소아과에 비해 고령층 등 성인의 독감 예방접종은 아직 미진한 편이다. 광진구에 위치한 병원 내과에는 비교적 환자들이 많이 방문하는 오전 10시임에도 대기 환자가 6명에 불과했다.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고령층 환자들은 마스크를 쓴 채 자신의 차례를 여유롭게 기다렸다. 마포구의 한 의원 관계자는 “노인 독감 예방접종 첫날인데 지난해에는 하루 50~60명 정도 방문한 데 비해 적은 편”이라며 “독감 백신 접종을 하는 곳이 늘어서 분산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등포구 병원에서 일하는 접수 창구 직원은 “독감 예방접종 비용이 3만~5만 원인데 경제 사정이 안 좋아져서 그런지 백신 접종을 하려는 사람이 많이 늘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무료 접종 대상자는 생후 6개월 이상 만 13세 이하 어린이와 임산부, 만 65세 이상 어르신이다.
독감 환자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다행히 일선 약국에서 감기약 품귀 현상은 아직 감지되지 않았다. 다만 방역 정책이 완화된 상황에서 환절기까지 겹쳐 여러 가지 호흡기 증상이 발생하는 ‘멀티데믹’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만큼 코로나19 초기 감기약 대란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실제 서울 일부 약국과 편의점에는 타이레놀 등 일반 감기약 재고가 없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약국에서 근무하는 약사 권 모(51) 씨는 “코로나 초기 때보다 상황이 나아졌지만 감기약 대란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라며 “일반약 중 종합 감기약은 여전히 부족하고 조제약도 원하는 약을 못 구해 대체 품목으로 조제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종로 5가에서 만난 약사 한 모(60) 씨도 “코로나 이후 기침약 해열제인 타이레놀 공급은 계속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독감 의사환자 증가 원인으로 정부의 방역 정책 완화를 지목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년 동안 잠잠했던 독감이 3년 만에 유행하는 것은 결국 정부의 거리 두기 완화 정책과 인과관계가 있다”며 “중증 환자 발생을 막기 위해 정부는 코로나와 독감 등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 접종을 확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