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자산가들의 만능 집사로 불리는 ‘패밀리오피스’ 시장 키우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2025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신탁업 규제를 확 풀어 국민들의 자산 관리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12일 금융위원회는 신탁 가능 재산 범위 확대, 다양한 신탁 상품 출현을 뒷받침할 ‘신탁업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혁신안의 가장 큰 특징은 ‘개별’ 신탁에서 ‘종합’ 신탁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금전신탁·부동산신탁 등 신탁 영역이 구분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금전·부동산·미술품 등 전체 자산을 한 번에 신탁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위해 신탁 가능 재산에 채무 및 담보권을 추가하도록 했다. 법무부와 협의해 보험 청구권을 신탁 재산에 추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초고령사회에 발맞춰 신탁사가 종합 생활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길도 터준다. 병원, 법무법인, 회계법인, 세무 법인, 특허 법인 등 비금융 전문 기관도 신탁 업무 일부를 맡도록 신탁 업무 위탁 규제를 정비한다. 고객은 재산뿐만 아니라 노후에 필요한 일체 서비스를 신탁 업자에 한 번에 제공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 혁신안에는 비금전 신탁재산의 수익증권 발행을 허용하는 안도 담겼다. 신용이 부족해 자산 유동화가 어려웠던 중소·혁신 기업의 보유 자산 유동화 및 자금 조달이 용이해졌다. 이번 조치로 조각 투자(저작권·꼬마빌딩 등)의 법적 기반도 마련됐다는 게 금융위 측 설명이다. 가업승계, 주택, 후견 신탁 제도도 보완한다. 가업승계 신탁의 경우 중소·중견기업 가업승계 목적으로 설정된 신탁에 편입된 주식은 온전히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허용할 방침이다.현행 자본시장법은 신탁을 통한 우회 지분 취득을 막기 위해 의결권 행사 한도를 15%로 제한한다.
국내 신탁업은 규제에 막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신탁 수탁액이 일본 173%, 미국 94%였지만 한국은 53%에 머물렀다.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약 2000조 원이었는데 신탁업이 미국 규모로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최소 1000조 원의 추가 성장이 가능한 셈이다. 신탁 역량을 갖춘 은행과 증권 업계의 시장 선점을 둔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패밀리오피스 시장도 대폭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패밀리오피스는 자산가들의 집사 역할을 한다. 가문의 자산관리(WM)와 세무·회계·상속·증여, 가문의 전통 계승,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까지 도맡아하는 만능 집사로 불린다.
고영호 금융위 자산운용과장은 “이번 신탁업 규제 개혁으로 국민의 노후 자산 관리, 승계가 보다 용이해지기 바란다”며 “내년 초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으로 이르면 내년 말부터 바뀐 신탁 제도가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