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 취임 2주년을 앞둔 현대자동차그룹이 18조 원을 투입해 전 차종의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대전환에 나선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대폭 끌어올려 스마트모빌리티 시대를 경쟁자들보다 한 발 앞서 이루겠다는 목표다. 정 회장 주도 아래 내연기관 중심에서 자율주행·도심항공 등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대전환을 구상하고 있다.
현대차(005380)그룹은 12일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한 ‘소프트웨어로 모빌리티의 미래를 열다’ 행사를 통해 ‘SDV 개발 계획 및 향후 비전’을 공개했다. 현대차와 기아(000270)는 2030년까지 총 18조 원을 투입해 소프트웨어 기술력 강화에 나선다. 구체적으로는 △커넥티비티·자율주행 등 신사업 관련 기술 개발 △스타트업·연구기관 대상 전략 지분 투자 △빅데이터센터 구축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미국·유럽 등 글로벌 지역에서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을 대대적으로 채용하고 관련 개발 조직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비전 발표는 정 회장의 취임 2주년과 맞물려 의미를 더했다. 정 회장은 취임 이후 줄곧 그룹을 내연기관 중심에서 ‘자유로운 이동’에 방점을 둔 스마트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현대차그룹이 과거처럼 ‘바퀴 달린 자동차’만 만드는 회사로 머물러서는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투자를 계기로 전기차·자율주행·로봇·도심항공 등 모빌리티 영토 확장에 나서려는 정 회장의 큰 그림이 현실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회장이 지난 2년 간 주도해온 전기차 전략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테슬라 일색이었던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이오닉 5, EV6 등 차별화된 성능과 디자인의 신차들을 적기에 출시했다. 전기차 선진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판매순위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자율주행,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새로운 분야에서 모빌리티 영토를 넓혀나가고 있다.
정 회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내연기관차 시대에 우리는 패스트 팔로어였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출발선상이 똑같다”며 “압도적인 성능과 가치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를 준비하면서도 현재 주력사업에서의 성과도 놓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순위 3위를 기록했다. 2000년 10위였던 현대차그룹은 올해 첫 ‘글로벌 톱3’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012330) 등 그룹 주력 계열사 3곳의 연간 매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27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맏형 격인 현대차 영업이익은 사상 첫 10조 원 벽을 깰 것으로 기대된다.
승승장구 중인 정 회장이지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여파에 따른 대책 마련, 반도체 기술 내재화 등 과제도 남아 있다. 현대차는 상반기 테슬라에 이어 미국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했지만 8월에는 5위로 떨어졌다. IRA 영향이 본격화될 올해 말부터는 판매량이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반도체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심각한 출고 적체도 해결해야 한다. 부분 파업을 선언한 기아 노조와의 관계 정상화도 두고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