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중견 건설사들의 공공택지 ‘벌떼 입찰’에 칼을 빼 들었지만 정작 불공정 입찰 행위 등의 조사 권한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실상 손 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벌떼 입찰은 건설사들이 추첨 방식으로 이뤄지는 공공택지 입찰에서 수십 개의 위장 계열사를 동원해 낙찰 확률을 높이는 행위다. 하지만 공정위는 벌떼 입찰이 단순히 확률을 높였을 뿐 낙찰을 확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불공정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고수하고 있다.
14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국토교통부와 벌떼 입찰 관련 조사를 협의했지만 아직 내부에서 조사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달 ‘벌떼 입찰 근절 방안’을 발표하고 국세청이 벌떼 입찰로 공공택지를 분양 받은 8개 건설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토부의 점검 결과 최근 3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택지를 추첨 공급한 133필지 중 111개 필지(83%)에서 페이퍼컴퍼니 의심 정황이 확인됐다.
국토부는 여러 계열사가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여 경쟁을 제한하는 벌떼 입찰이 부당공동행위(담합)에 해당될 수 있다고 봤지만 공정위의 판단은 달랐다. 추첨 방식에 의한 입찰이라 사전에 낙찰자와 낙찰 가격 등을 의도한 대로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적인 이유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많은 계열사를 동원해 입찰에 참여한 기업이 유리하기는 하지만 개별 계열사 입장에서 보면 낙찰 확률에는 변함이 없다”며 “당시 국토부가 제도적으로 계열사를 동원한 입찰 자체를 금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몇몇 건설사들이 최근 5년간 공공택지 개발을 싹쓸이하다시피했다는 점이 문제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호반·대방·중흥·우미·제일 등 5개 건설사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178필지의 공공택지 중 67필지(37%)를 낙찰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많이 낙찰 받은 건설사는 호반건설로, LH가 이 기간 공급한 전체 공공택지의 10분의 1인 18필지를 가져갔다. 다음으로는 우미건설(17필지), 대방건설(14필지), 중흥건설(11필지), 제일건설(7필지) 순이었다.
이들 건설사는 택지당 수백억 원대의 개발이익을 독식하면서 급성장했다. 호반건설의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2012년 32위에서 13위로 올랐고 같은 기간 우미건설은 47위에서 25위, 대방건설은 66위에서 15위, 중흥건설은 77위에서 17위, 제일건설은 114위에서 24위로 껑충 뛰었다. 재계 순위도 중흥건설은 2018년 34위에서 올해 20위, 호반건설은 같은 기간 44위에서 33위로 급등했다. 강 의원은 “이들 업체는 벌떼 입찰로 무한 성장했고 건설 시장경제는 혼란에 빠졌다”고 꼬집었다.
다만 벌떼 입찰로 택지를 낙찰 받은 뒤 이뤄진 계열사 간 거래를 공정위가 부당지원행위로 제재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시공사 A는 벌떼 입찰로 미성년 자녀가 지배하는 시행사 B가 공공택지를 취득하게 하고 아파트 공사에 저가로 용역을 제공했다. C사는 공공택지를 낙찰 받은 뒤 사업 시행을 포기하고 사주 자녀가 지배하는 시행사 D에 택지를 저가 양도하기도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벌떼 입찰 과정에서는 계열사 간 거래가 없기 때문에 부당지원행위로 보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이후 행위들은 전형적인 부당 내부 거래 유형들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이러한 벌떼 입찰을 볼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부가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과밀억제권역 등 규제지역에서 실시하는 300가구 이상의 공공택지 입찰에 ‘1사 1필지’ 제도를 도입해 건설사가 계열사를 다수 보유했더라도 1개의 회사로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로 자격 요건이 되지 않는 페이퍼컴퍼니가 택지를 낙찰 받은 사실이 확인된 경우 계약 해제, 택지 환수, 환수 불가 시 부당이득 환수 및 손해배상 청구 등 추가 조치가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