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 스타일을 지닌 솔로 아티스트의 탄생이다. 혼성듀오 악뮤(AKMU) 이찬혁이 솔로 앨범으로 자신의 음악적 사유를 마음껏 뽐냈다. 한 편의 영화처럼 삶에 대한 그의 깊은 고찰이 무게 있게 담겼다. 새롭게 태어난 이찬혁의 음악 인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지점이다.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YG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이찬혁의 솔로 정규 1집 ‘에러(ERROR)’ 기자간담회가 개최됐다.
이번 앨범은 이찬혁이 8년 만에 발표하는 솔로 앨범이다. 지난 2014년 데뷔 이래 악뮤 프로듀서이자 보컬로 활약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그려냈던 것의 새로운 모습이다. 이찬혁은 “이렇게 빨리 나의 개인 작업물을 발표하게 될지 몰랐다. 올해 초 갑자기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많은 분들이 들어줄 것 같았다”고 자신감 있는 소감을 전했다.
‘에러’는 솔로 아티스트 이찬혁의 음악 세계를 함축한 앨범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찬혁이 전곡 작사·작곡했다. 이찬혁의 초심을 찾는 여정이자, 그의 20대 후반 삶의 방향성을 담은 앨범이다. 그는 앨범명에 대해 “악뮤로 활동하면서 즐거웠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해왔다. 그런데 이찬혁의 앨범을 만들면서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번 앨범은 악뮤의 전작 ‘넥스트 에피소드(NEXT EPISODE)’의 수록곡 '벤치(BENCH)'에서 시작됐다. 그는 “이전 악뮤 앨범에서 ‘자유’와 ‘사랑’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당장 죽게 된다면 난 여전히 그것을 나의 최대 가치로 생각할 것인가’ 고민하게 됐다. 거기서 찾아오는 모순적 생각들이 있었고 이번 앨범을 통해 그 간극을 줄여 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벤치’는 ‘나는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이 없어져도 저 벤치 위에 살아도 행복할 자신있어’라고 말하는 곡이다. 내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는 자유이니까 내가 빈털터리가 되고 남들이 나를 비난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썼지만, 내가 죽는 순간이 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했더니 감당할 수 없었다”며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는 ‘벤치’가 재수 없는 노래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것에서 담지 못한 것을 이 앨범에서 담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총 11곡의 곡은 유기성을 갖고 하나로 엮여있다. 이야기는 이착현의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에 마주한 모순, 그리고 미래를 향한 욕망 날 것 그대로가 담겼다. 특유의 솔직한 감성과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고, 삶에 대한 태도와 심리적 변화가 인상적이다.
타이틀곡 ‘파노라마’는 이번 앨범의 정점이다. 죽기 전 지난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삶에 대한 미련과 열망을 이찬혁만의 담담한 어법으로 풀어냈다. 슬픈 가사와 상반되는 밝은 멜로디와 이찬혁의 보컬이 어우러진다.
수록곡 ‘마지막 인사’는 유일하게 타 아티스트의 피처링이 있는 노래로, 가수 청하가 함께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의 담백한 보컬이 특징이다. 이찬혁은 “청하는 이 노래를 만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사람이다. 목소리가 중요했다”며 “되게 밝지도 않고 기교가 엄청나지도 않다. 후회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목소리 톤으로 나와 함께 아웅다웅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고 말했다.
마지막 트랙 ‘장례희망’ 또한 인상 깊다. ‘장래’가 아닌 ‘장례’(funeral)’를 사용한 것이 포인트다. 이찬혁은 “11곡을 거치면서 이전에 있었던 악뮤 이찬혁이라는 캐릭터가 죽고 다시 깨달음을 안고 이찬혁이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을 담았다. 이전의 이찬혁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전의 삶이 정말 솔직한 나의 모습이 아니었구다고 괴로워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찬혁은 앨범 전부터 특별한 프로모션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명 ARS 프로젝트로 전화를 걸면 첫 번째 트랙 ‘목격담’이 흘러나오다가 “이찬혁을 찾습니다. 행방을 아시는 분은 2022년 10월 17일까지 연락을 달라”고 한다. 그는 “이찬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전에 있던 악뮤 이찬혁은 사라지고 새로운 이찬혁이 온다고 암시하는 프로젝트”라고 소개해 호기심을 자아냈다. 실제로 그는 여의도와 광화문 거리 등 예상치 못한 장소에 등장하며 웃음을 안긴 바 있다.
최근 화제가 된 KBS1 ‘전국노래자랑’ 객석에서 발견된 장면은 우연이었다고. 그는 “스케줄을 마치고 지나가는 길에 노래 소리가 재밌게 들려서 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마침 MC가 바뀐다는 것을 알아서 가봤다.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노출이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도 EBS ‘딩동댕 유치원’을 비롯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며 목격담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독특하고 신선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찬혁은 스스로를 ‘청개구리’라고 칭했다. 그는 “최근 내가 중요한 캐릭터 중에 하나가 청개구리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악뮤로 해왔던 것들이 호평을 받고 많은 사랑으르 받은 것에 감사함이 있지만 이게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 악뮤 앞에 어쿠스틱 듀오라는 말이 붙었을 때 ‘아니다. 난 댄스를 하고 싶다’고 했고, YG에 입사했을 때 어쿠스틱이라는 틀에 박혀있는 장르가 괴로워서 일렉트로닉을 하고 싶다고 해서 ‘다이너소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찬혁은 솔로 데뷔에 대해 악뮤 이찬혁과 구분 지었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동생 이수현을 염두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고 할 정도. 이수현도 그의 앨범을 듣고 감동해 눈물 짓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악뮤로 많은 걸 보여줬는데 수현이도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만든 캐릭터 안에 수현이가 같이 들어오기가 쉽지 않아졌다. 수현이도 확실한 캐릭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내 이미지를 찾기 위해 내 앨범을 내야 했고 그 과정이 즐겁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했다.
악뮤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악뮤를 예쁜 남매로 봐주는 것이 그냥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앞으로도 보답하는 노래를 할 것이다. 솔로 앨범에서는 내 욕심을 담은 노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기하게도 수현이와 나는 음악적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재밌는 걸 하고 싶다”며 “이때까지 거쳐오면서 다음 할 말이 있지만 커가면서 쉽게 가치관이 변하지 않더라. 우리가 모든 걸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면 조금 더 앨범이 오래 걸리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음악을 대하는 이찬혁의 자세는 남다르다. 앨범에 대한 반응도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고. 그는 “알려지는 것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내 음악으로 영향을 받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면 사회적 변화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난 음악보다 사회에 여러 것을 던지는 것을 하고 싶은 것 같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편 이찬혁의 ‘에러’는 이날 오후 6시 각종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피지컬 음반은 오는 18일 발매된다.